박사형유고 ()

유교
문헌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박사형의 시 · 제문 · 잡저 · 행장 등을 수록한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미상
간행 시기
미상
저자
박사형(朴師亨)
편자
미상
권책수
2권 2책
권수제
유고(遺稿)
판본
필사본
표제
박사형유고(朴師亨遺稿), 선조유고(先祖遺稿)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박사형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박사형의 시·제문·잡저·행장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필사한 유일본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박사형은 서계 박세당의 증손자로서, 소론계의 문인이었다. 『박사형유고』에는 박사형의 가족과 관련된 기록, 소론계의 교류 양상을 보여 주는 자료와 더불어, 박사형의 자기 수양과 학문, 현실 인식을 보여 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박사형의 시 · 제문 · 잡저 · 행장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저자

저자 박사형(朴師亨, 17121782)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字)는 성행(聖行)이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증손자이고, 박필기(朴弼基)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에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주1에 천거된 것을 시작으로, 세자익위사 부솔(副率),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 장례원(掌隷院) 사평(司評), 사복시(司僕寺) 주부(主簿), 군자감(軍資監) 정(正), 성천부사(成川府使)를 역임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박사형유고』에는 간행 경위를 알려 주는 서발문(序跋文)이 없다. 그러나 유일본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 각 권의 끝에 경기(京畿)의 가와구치 우키쓰[川口卯橘], 박승준(朴勝駿), 오희선(吳禧善), 홍승륜(洪承綸), 나카무라 히데타카[中村榮孝]가 필사했다는 표시가 있다. 『박사형유고』의 가장 바깥쪽 표제는 ‘박사형유고(朴師亨遺稿)’이고, 안쪽 표제는 ‘선조유고(先祖遺稿)’인데, 이로 볼 때 박사형의 후손가에서 가장(家藏)하고 있던 원고를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필사했다가, 해방 이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인수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가와구치 우키쓰는 19251931년에, 나카무라 히데타카는 19261927년에 조선사편수회 촉탁위원으로 활동했으므로, 1926년경에 본 필사본 『박사형유고』가 제작되었을 것이다.

구성과 내용

2권 2책의 구성이다. 10행 20자의 필사본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41제(題), 제문(祭文) 22편, 잡저(雜著) 13편, 유사(遺事)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체(詩體)별로 분류하지 않고, 16세에 둘째 형인 박사득(朴師得)에게 차운한 것을 시작으로 창작 시기순으로 수록했다. 주제에 있어서는 자연을 인간 생활에 흡수시켜 읊은 서정시가 많다. 특히 「경차자면운(敬次自勉韻)」에서는 학문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해 스스로의 노력과 결심을 나타냈다. 두 형, 아버지 등 가족의 시에 차운한 작품들과 더불어, 봉상정(鳳翔亭) 등을 유람하면서 그 제영시(題詠詩)에 차운한 것이나, 『구당집(久堂集)』 등의 문집을 읽고 차운한 시들이 있다. 이외에 주3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 많은 가운데, 주2는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다.

제문은 둘째 형 박사득(1730년), 첫째 형 박사심(朴師心, 1736년), 큰누나(1742년)를 시작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지은 제문들이 창작 시기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기우제문 등이 연대 표시 없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잡저는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포함하고 있다. 「일성록(日省錄)」에서는 실천 규범에 대해 매자순성(每自循省)·선절이심(先絶利心)·사우택경전(師友擇經傳)·독서입기본(讀書立其本)·자량경중(自量輕重)·예욕간이(禮欲簡易)·행지전일(行止全一)·권의시변(權宜時變)·신독(愼獨)·불천노(不遷怒) 등으로 분류해 논했다. 「학규기략(學規記略)」에서는 학과(學課)의 규정을 심지(心志)·기상(氣像)·언어(言語)·동지(動止)·제행(制行)·처사(處事)·접인(接人)·독서(讀書) 등으로 구분해 정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이밖에 「논사(論史)」와 「유계(遺誡)」 등 경전(經典)·훈고(訓詁)에 대한 논술이 있다. 「상산기행(裳山記行)」, 「단산기행(湍山記行)」(1770년), 「풍악기행(楓嶽記行)」은 유람의 여정과 감흥을 상세히 기록한 산수유기(山水遊記)들이다.

유사는 둘째 형,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과, 소론계로서 윤동원(尹東源, 1685~1741)의 조카인 임현중(任顯中)의 유사에 대해 지은 후지(後識) 총 3편이다.

권2에 행장(行狀) 10편, 묘지명 1편, 묘표(墓表) 3편, 연화(筵話) 1편, 장첩(壯帖) 3편, 서(書) 26편, 유계(遺誡) 1편이 수록되어 있다.

행장은 큰형을 위한 것을 시작으로, 신사민(申思敏), 박필강(朴弼康) 등의 주로 가족들이나 한미한 주변인들을 위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어서 모친 풍천임씨(豊川任氏)의 묘지명, 선조인 박조년(朴兆年, 1459?~?)의 묘표 등 가족들의 묘도문자가 있다.

연화는 1758년에 세자익위사의 관원으로서 경연에 참석했을 당시의 강론을 기록한 것이다. 장첩은 삼정의 문란함을 규탄한 「진삼정불균장(陳三政不均狀)」, 1764년에 홍유(洪洧) 등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고발한 「신홍유고변장(申洪洧告變狀)」, 권학을 역설한 「권학하첩(勸學下帖)」이다.

서는 가족들과 조영희(趙榮喜) 등의 주변인에게 보낸 것들이다. 수신인의 이력을 고증할 수 없는 것이 많고, 또 수신인이 누락된 것도 많으나, 그 중에 이광려(李匡呂, 17201783), 윤광소(尹光紹, 17081786) 등의 소론계 주요 인물에게 보낸 서찰도 있다. 내용은 대체로 안부 인사에 관한 것이나, 윤광현(尹光絢)에게 보낸 「여윤창평(與尹昌平)」은 저자의 증조부 박세당이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해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견해를 발표함으로써 주4의 낙인이 찍혀 관을 삭탈당한 후 얼마 안 되어 이인엽(李寅燁)의 상소로 신원되었는데, 그 뒤 호남의 유림들이 변무소(辨誣疏)를 올려 다시 처벌할 것을 주장하자, 사림의 공적인 거사에 간섭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손으로서 후환이 일어날까 염려되어 그 경위를 서술한다는 내용이다.

유계는 사망하기 직전인 1782년에 상장례(喪葬禮)의 가법(家法)을 후손에게 전하는 글이다.

부록으로는 묘표 1편, 유사(遺事) 2편이 수록되어 있다. 묘표는 박사형의 아들인 박화원(朴和源)이 지었다. 유사는 이교년(李喬年, 1718~1788)이 정리한 박사형의 유사와, 박사형의 누나의 기록을 채록한 박사형의 부인 양주조씨(楊州趙氏)의 유사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18세기 소론계 인물의 가족 관계와 정치적·사회적 인식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원전

朴師亨, 『朴師亨遺稿』
주석
주1

세자익위사에서 왕세자를 보좌하는 정9품 관원이다. "洗馬"를 현재 한국한자음으로 "세마"로 읽는 것은 오류로, "선마"가 올바른 발음이다. 이는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주2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 우리말샘

주3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함. 우리말샘

주4

성리학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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