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의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에 의하면 찐떡(甑餠 증병)에 속한다.
찐떡은 곡분을 시루에 쪄서 완성한 떡이다. 시루에 떡을 앉히는 방법에 따라서 설기떡·무리떡·편·두텁떡 등으로 불린다. 재료에 따라 메시루떡·차시루떡이 있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증편·송편 등이 있다.
시루는 민무늬토기시대와 김해문화시기의 것이 삼국시대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안악고분벽화에는 시루에서 부인이 음식을 찌고 있는 주방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무문토기시대의 유물 중에 제분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연석 등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1∼2세기경부터 우리나라에 곡식을 가루로 내어 찌는 시루떡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시루떡은 한국 떡류의 원초형이라 할 수 있다.
백편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다. 1800년대 말의 조리서 ≪시의전서 是議全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이전 1670년(현종 11)경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명칭은 석이편이라 하였으나 제조방법은 백편과 비슷한 기록이 있다.
그 뒤의 조리서인 ≪조선요리법≫(1938), ≪조선요리≫(1940)에 백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간편조선요리제법≫(1934), ≪조선무쌍신식요리≫(1943), ≪궁중음식≫(1968)에서는 명칭은 백설기라 하였으나 만드는 방법은 백편과 같다.
백편은 혼례·회갑연·제례 등 잔치 때에 만드는 고급스러운 떡의 하나이다. 주재료는 멥쌀가루와 설탕이다. 고명으로는 석이·생률·대추·실백·청매·파래 등이다. ≪시의전서≫에는 설탕이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조리서에는 모두 설탕이 사용되었다.
고명은 석이채·생률·대추·실백을 주로 사용하였다. 청매나 파래도 사용하였다. 고명은 줄과 색을 맞추어 수놓듯 놓아서 쪘다. 고명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소금으로 간을 해서 찌기도 하였다.
백편의 두께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약 2cm 정도로 하고, 백지에 기름을 발라서 켜를 만들었다. 백편은 백설기와는 달리 가루에 물을 내리지 않고 찌는 떡이다. 조리서마다 조금씩 방법이 달라서 물을 내리지 않거나 물·설탕물·소금물을 조금 내렸고, 찹쌀가루를 조금 넣으면 더 좋다고 하였다. 1913년 ≪조선요리제법≫에는 찹쌀가루를 넣어 찌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