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최진(柳最鎭: 1791~?)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미재(美材) 또는 미재(美哉), 호는 학산(學山) · 학산목재(學山木齋) · 산초(山樵) · 정암(鼎庵) 등이다. 그의 집안은 6대가 의업(醫業)에 종사한 의과중인(醫科中人) 출신인데, 이보다 서화가로서 유명한 여항인(閭巷人)이다. 청산(淸山) 김선신(金善臣)에게 문학을 배웠고, 이것을 계기로 서원(犀園) 김선(金䥧)과 산천(山泉) 김명희(金命喜)를 모시고 공령문(功令文)을 연마했다.
1822년 봄에 포쇄(曝曬)하러 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좇아 강원도 일대를 유람하고, 같은 해 10월에 동지사행 정사 김노경(金魯敬)의 수행원으로서 청나라 연경을 방문했다. 조희룡(趙熙龍)과 막역한 사이였고 이기복(李基福)과는 신유(神遊)를 나누었다. 벽오사(碧梧社)의 맹주로서 이들 외에 전기(田琦) · 유숙(劉淑) · 오창렬(吳昌烈) · 이팔원(李八元) 등 당대 대표적인 여항인들과 교유했다.
『병음시초(病碒詩艸)』는 4책의 필사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편찬 경위는 불분명하다. 작성 시기를 밝혀서 지은 자서(自序)나 간지(干支)를 넣어 명명한 소집의 이름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저자 자신이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시기별로 정리했던 듯하다. 필사본 4책으로 남아 있던 것을 1991년에 『이조후기 여항문학총서』 제6책에 유최진의 다른 저술들과 함께 수록하여 간행된 바 있다.
이 책은 불분권 필사본으로 모두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책은 ‘학산시초(學山詩艸)’이며 권두에 「병음시초자서(病唫詩艸自序)」가 놓여 있고, 제2책은 「병초수초오우한영정미집자서(病樵手抄五友閑咏丁未集自序)」라는 서문이 있고, 본문 첫 면에 ‘정미집(丁未集)’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1847년 벽오사를 결성하고 만든 시사의 규약 「벽오사약(碧梧社約)」과 벽오사의 구성원들을 명기해 놓은 「추우고 병서(秋雨稿 幷序)」는 19세기 여항시사의 구체적인 양상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 제3책은 ‘병음시초오집(病吟詩艸午集)’이며 「병음시초자서(病吟詩艸自序)」가 권두에 있다. 제4책은 ‘학산시집(學山詩集)’이며 서문은 없고 첫 수록작 앞에 ‘이운소초(怡雲小艸)’라 했고 ‘을미추(乙未秋)’ 3자를 작은 글자로 부기해 놓았다. 시의 내용은 매화 · 국화 · 대나무 · 난초 · 돌 · 구름 등의 덕을 칭송한 것이 많고, 정월대보름 · 한식 등의 명절이나 절기의 변화를 맞이해 자신의 감회를 읊은 작품, 한거의 심정을 읊은 작품 등이 있다. 또한 남한산성 · 봉은사(奉恩寺) 등 유명한 유적지나 사찰을 찾아가 지은 시도 있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여항 문인의 시집으로서 당대 여항인들의 교유와 문학 활동 양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