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에, 왕실의 구성원을 양육하기 위하여 설치한 제도이자 그곳에 종사한 여성을 말하며, 근대 이후에는 유치원, 보육원, 탁아소 등에서 어린이를 돌보며 가르치는 여성의 직업.
변천
전통 시대에는 일반 여성이나 양반 여성들이 산후조리와 수유를 위하여 보모나 유모를 두었다. 또한, 조선왕조는 왕실의 아이들에게 왕실의 예절과 법도를 교육할 보모를 두었다. 상궁이 배속될 수 있는 위계의 왕실 자녀에게는 상궁 중에서 보모를 두었는데, 이를 보모상궁이라 하였다. 보모상궁은 왕실 자녀의 양육을 맡은 궁녀 중의 총책임자였다. 상궁이 배속되지 않는 왕실 자녀의 경우 상궁이 아닌 일반 보모를 두었고, 모시던 왕실 자녀가 성장하여 왕이 될 경우 보모는 상궁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왕실 보모는 봉보부인(奉保夫人)으로 임명되어 외명부에 소속되기도 했는데, 이는 궁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품계였다. 일제강점기에 ‘보모’는 유치원 교사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며 여성의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미취학 아동의 양육과 교육이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데 반해 근대 이후에는 유치원이라는 공적 기관에서 이루어졌다.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유치원이 설립되고 서구적인 아동 교육 이념이 도입되면서 어린이 교육을 담당할 교사가 필요해진 것이다.보모가 되기 위해서는 보육 학교와 같은 곳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했다. 여자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는 보육 학교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 여성 교육률이 매우 낮았던 일제강점기에 보육 학교는 고학력의 여성이 지원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보모는 당대 최고 수준의 엘리트 여성이었다.
산업화 이후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의 급증으로 사적 영역인 가족이 담당하던 영유아 돌봄에 공적이고 제도적인 개입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혼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증한 1980년대까지도 국가의 보육 대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1990년대 초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책임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영육아보육법」은 보육 시설의 설치 운영에 대한 법적 기준과 보육교사에 대한 자격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사회의 진전에 따라 영유아 돌봄을 공공 영역이 담당하게 되면서 탈가족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따라 일반 가정에서 육아를 일정 정도 담당하던 보모나 직업으로서의 ‘보모’는 자격증을 획득하고 전문성을 가진 보육교사로 자리매김하였다.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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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숙·박진화, 「탈가족화 정책들의 역사적 변천과정」(『공공사회연구』 5(3), 한국공공사회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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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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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왕자나 왕녀의 양육을 맡아보던 나인들의 우두머리 상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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