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에 있는,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절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는 없는 상태이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천년 고찰임은 분명하다. 11세기 전반 법상종의 대지국사 법경이 주석하였으며, 그의 비가 건립되었다. 조선 전기까지 ‘삼천사(三川寺)’라고 부르다가 조선 후기부터 ‘삼천사(三千寺)’로 바뀌었다.
삼천사(三千寺)는 661년(신라 문무왕 1)에 원효(元曉: 617~686)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입증할 문헌 기록이나 금석문,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남아 있는 높이 3m의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1979년 5월 22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이 주석하였는데, 그는 유식(唯識)을 업으로 하는 법상종(法相宗) 종찰인 개경 현화사(玄化寺)의 초대 주지를 맡은 인물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020년(현종 11)에 왕사, 1032년(덕종 1)에 국사를 지낸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다. 삼천사에 대한 내용도 보이는데, 그 무렵인 1027년(현종 18) 6월에 삼천사(三川寺)와 장의사(莊義寺), 청연사(淸淵寺)의 승려들이 술을 빚지 말라는 법을 어기고 쌀 360여 석으로 술을 주조하여 법률로 죄를 물었다는 기사가 주1 당시에는 삼천사의 ‘천’ 자를 ‘천(川)’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삼각산 ‘삼천사(三川寺)’로 나오며, 11세기 고려 문종 때에 한림학사를 지낸 이영간(李靈幹)이 지은 비가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것이 1041년(정종 7)에 쓰여진 대지국사비로, 2005년~2008년에 진행된 북한산 삼천사 터 발굴 조사 때 비편 255점이 출토되어 총 127자가 확인되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사찰명이 현재와 같은 ‘삼천사(三千寺)’로 바뀌었는데, 이 절에서 3,000명이 머물며 수행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북한지(北漢誌)』[1711년]에도 ‘삼천사(三千寺)’로 나오며, 원효가 창건하고 진관조사(津寬祖師)가 중창한 절이라고 되어 있다. 근대기까지 운영되다가 한국전쟁 때 불에 탄 뒤, 1960년대 이후 중창 공사가 이어졌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나한전, 천태각, 산령각 등이 있고, 근래에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과 5층 석탑이 자리한다. 또한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이 마애불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양각과 음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선이 잘 표현되어 있는 예술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