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삼천사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에 있는,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절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는 없는 상태이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천년 고찰임은 분명하다. 11세기 전반 법상종의 대지국사 법경이 주석하였으며, 그의 비가 건립되었다. 조선 전기까지 ‘삼천사(三川寺)’라고 부르다가 조선 후기부터 ‘삼천사(三千寺)’로 바뀌었다.
정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에 있는,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절.
건립경위
변천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사찰명이 현재와 같은 ‘삼천사(三千寺)’로 바뀌었는데, 이 절에서 3,000명이 머물며 수행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북한지(北漢誌)』[1711년]에도 ‘삼천사(三千寺)’로 나오며, 원효가 창건하고 진관조사(津寬祖師)가 중창한 절이라고 되어 있다. 근대기까지 운영되다가 한국전쟁 때 불에 탄 뒤, 1960년대 이후 중창 공사가 이어졌다.
형태와 특징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북한지(北漢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논문
- 박영민, 「고려 전기 삼각산 지역 마애조상 연구」(『미술사학』 47,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4)
주석
-
주1
: 『고려사(高麗史)』 권5, 세가 제5 현종 18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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