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치악산(雉岳山) 남대봉 아래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건립과 변천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 1320~1376)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 · 위학(偉學) · 정암(靜巖) · 해봉(海峯) · 삼공(三空) · 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을 국태안민(國泰安民)을 위한 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하였다. 1988년 경덕(敬悳)이 대웅전을 다시 짓고, 범종각과 일주문을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炎文)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光背)와 연화대석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절 뒤쪽 200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와, 무착이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 와 심었다는 계수나무 네 그루가 있다.
전설
참고문헌
단행본
-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하(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이고운·박설산, 『명산고찰따라』 (신문출판사, 1987)
- 이정, 『한국불교사찰사전』 (199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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