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광무 4) 대한제국기에 내장원경 이용익이 주도하여 자력으로 철도를 부설하려는 노력에 따라 설치된 것이다.
1900년(광무 4) 9월에 궁내부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서북 지방에 철도를 부설하는 방침을 세웠다. 궁내부의 내장원에서는 산하에 이용익을 총재로 하는 서북철도국을 별도로 설치하여 경의선 철도를 직접 관할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서북철도국에서는 1901년(광무 5) 7월까지 우선 서울과 개성 간의 구간을 측량하고, 3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협궤 철도 건설을 결정하였다. 이용익은 해관세를 담보로 하여 철도 부설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당시 프랑스 측의 제의를 거절하고, 다만 기술 지원만 받아서 서북 지역에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 결과 우선 서울에서 개성까지 철도를 부설하기로 하고 프랑스 기사 2명을 초빙하여 노선을 측량하는 등 준비 작업을 거쳐 1901년(광무 5) 7월 경에 해당 구간의 측량을 완료하였다. 이어 1902년(광무 6) 3월에 30만원의 자금과 매달 20만원의 공사비를 전환국에서 지원받아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1902년(광무 6)에 기공식을 열고 프랑스인 르 페브르(M. Lefevre)를 감독으로 하여 마포에서부터 철도 부설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공사의 진행은 순조롭지 못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가 제일은행을 통해 차관을 제공하여 한일 공동 사업으로 하자고 제의하였지만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결국 1903년(광무 7) 7월에 일제가 사주하는 대한철도회사라는 민간 회사에 철도 사업권을 넘기게 됨에 따라 이용익이 주도하는 자력에 의한 서북철도 건설은 무산되었다. 1904년(광무 8)에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군수품을 운반하기 위하여 군용 철도를 부설하면서 서북철도국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