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철도회사는 1899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철도회사이다. 1899년 3월 철도 부설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박기종(朴琪淙)이 학부(學部) 편집국장 이규환(李圭桓),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 서병숙(徐丙肅) 등 10여 명과 함께 설립하였다. 1902년 박기종이 영남지선철도회사(嶺南支線鐵道會社)를 설립하고 삼랑진과 마산을 연결하는 삼마철도(三馬鐵道) 부설권을 확보하였지만, 일본의 방해와 자금 및 기술력의 부족으로 일본의 경부철도회사(京釜鐵道會社)에 부설권을 매도하면서 철도 부설 계획은 좌절되었다.
박기종은 1898년 외부(外部) 참서관(參書官)으로 중앙 관계에 진출하게 되자, 부산항과 하단포(下端浦)를 연결하는 경편철도(輕便鐵道)를 부설하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하철도회사(釜下鐵道會社)를 설립하였다.
이하영 · 지석영 · 이인영 등 부산 출신 유력인사를 규합해 1899년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하고, 서울원산, 원산경흥을 잇는 경원선(京元線)과 함경선(咸鏡線) 부설권을 확보하였다. 경의선(京義線) 부설권을 확보한 프랑스 회사 피블리유(Compagnie de Fiveslille)가 3년이 지나도록 착공하지 못해 특허를 상실하자 대한철도회사는 경의선 부설권마저 가져갔다.
박기종은 외자 도입을 거부하고 민족 자본을 고집하다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특허 기간인 1년이 지나도록 착공하지 못하자, 경원선과 경의선 부설권은 궁내부(宮內府) 철도국(鐵道局)으로 환수되었다.
1902년 박기종은 영남지선철도회사를 설립하고 삼랑진과 마산을 연결하는 삼마철도 부설권을 확보하였지만, 일본의 집요한 방해와 자금 · 기술 부족으로 일본의 경부철도회사에 부설권을 매도하고 철도 부설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대한제국 내 모든 간선 철도를 군사 철도로 부설할 것을 결정하여 대한제국 간선 철도의 부설권과 운영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