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계집』은 현재 영남대학교 도서관 1권 1책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3종류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3종의 필사본은 수록된 작품 수와 편차(編次)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이나 기본적인 편집 체계가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과 유사하여 어느 본이 선행본(先行本)인지 선본(善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가장섬계선생유사(家藏剡溪先生遺事)』와 『섬계선생사실(剡溪先生事實)』 이라는 제목으로 2종류의 필사본이 전하고 있다.
권수(卷首)에 오광운(吳光運)과 권중경(權重經)의 서문(序文)이 있다. 『섬계집』에는 시 67제(題) 102수(首), 통문 1편, 상소 1편, 부록으로 상소 3편, 연설(筵說) 1편, 고묘문(告廟文) 3편, 분황문(焚黃文) 1편, 제문 11편, 묘갈명 1편, 서(書) 1편, 유집후(遺集後) 1편, 찬(贊) 2편, 차운시(次韻詩) 11수, 시 2수, 통문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섬계집』에 수록된 상소문(上疏文)과 「태학통문(太學通文)」은 1706년 김춘택(金春澤)이 세자를 모해하니 김춘택을 처벌해 줄 것을 상소하고, 성균관유생에게 통문(通文)한 것이다. 당시 임부(林溥)가 이 문제로 상소했다가 국문(鞠問) 끝에 죽자,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저자가 과감히 상소한 것이다. 이 글들은 18세기 초 당쟁사, 특히 노론(老論)과 소론(少論) 및 남인(南人)과의 대립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잠의 시는 시대와 세도(勢道)를 염려하고, 나라를 걱정하며[憂國] 지은 작품이어서 일반 문인들의 작품과는 다르다. 「복궐시구점(伏闕時口占)」은 상소문을 올릴 때 지은 작품으로, 충성심과 절의에 가득차 있다. 「분운득관자(分韻得關字)」는 장편의 칠언고시로 저자의 인생관을 서술한 작품이다.
「산거즉사삼십운(山居卽事三十韻)」은 자기의 궁핍한 살림을 묘사하면서, 관리들의 호사스러운 생활과 백성들의 피폐한 모습을 대립시켜 놓았다. 자신은 평생 세상을 다스리고 경영할 뜻을 품고 있었으나, 현실의 모순된 구조 속에서 아무런 힘도 기반도 없는 선비임을 표현하였다. 이 시는 당대의 정치 권력이 백성들의 생활과 얼마나 떨어져 있던가를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