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상(申翼相: 1634~1697)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숙필(叔弼), 호는 성재(醒齋)이다. 16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 설서(說書)를 지냈고, 숙종이 즉위한 뒤 예론(禮論)으로 당쟁(黨爭)이 치열해지자 충청도 아산으로 은거하였다. 이후 도승지, 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하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하려 하자 이의 부당함을 극간하고 다시 사직하여 양주로 내려갔다. 1694년 갑술옥사로 소론(少論)이 등용되자 공조판서가 되고,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다.
불분권 10책(冊)이다. 필사본으로 여러 필체가 보이는바, 여러 명이 함께 등출(謄出)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의 후손인 신준(申濬)의 손을 거쳐 산정(刪定)된 3책, 기존에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유고(遺稿)를 거의 그대로 싣고 부록을 함께 엮은 7책을 합쳐 10책을 한꺼번에 등출하였다. 곳곳에 교정(校正)을 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간행을 염두에 두고 필사한 것으로 보이나 간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신준의 손에 산정된 3책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책15는 시(詩)이다. 책13은 5세손 신준이 산정한 부분이고, 책4~5는 그 나머지를 모은 것이다. 책1부터 책2의 중반 「차정경력협운(次鄭經歷悏韻)」까지는 뽑은 시들을 연대순으로 편차한 것인데, 민이주(閔而周), 형 신필상(申必相)과 동생 신우상(申遇相), 박세채(朴世采), 박세당(朴世堂) 등과 나눈 시, 청부(靑鳧) 등의 기행시, 월과(月課)로 지은 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에 송시(送詩)와 증지(贈詩)를 모아 놓았고, 그 뒤로 다시 목록을 싣고 만시(挽詩)만을 대체로 연대순으로 모아 놓았다.
책3에는 「유감(有感)」 등 주로 감회를 읊은 시, 친우(親友)인 권상운(柳尙運)과 나눈 시, 「실제(失題)」 등 습유(拾遺), 양주(楊州) 노원(蘆原), 남양(南陽) 우거 때의 시작(詩作), 「야좌(夜坐)」 이하 어린 시절의 시작 등을 모아 놓았고, 그 뒤에 1834년에 신준이 적은 지(識)가 실려 있다. 책4에는 권상운 등 친우와의 차운시만을 모아 놓았다. 책5에는 북관록(北關錄)과 나머지 시, 고시, 행시(行詩)가 실려 있다. 북관록은 1674년 북도병마평사 시절에 지은 257수의 시를 모은 것으로, 1676년과 1701년에 권상운이 지은 발(跋)이 부기되어 있다.
책69는 소차(疏箚), 서계(書啓), 장계(狀啓), 계사(啓辭), 수의(收議)와 시장(諡狀), 서후(書後), 제문(祭文), 록(錄), 기(記), 서(序), 발(跋), 묘도문자(墓道文字) 등이 뒤섞여 있다. 소차와 서계의 경우, 책6에는 16801686년의 사직소(辭職疏)만 실려 있고, 책7에는 1695년, 책8에는 16961697년의 소차와 서계가 시기순으로 실려 있다. 16871694년의 내용은 없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양주, 남양, 광주 등에서 우거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계는 책6에 1681년 전라 감사 때와 1683년 평안 감사 때 올린 것이 실려 있고, 계사는 책6에 1695년 판의금부사로 올린 것과 책8에 1680년과 1697년에 올린 것이 실려 있다.
수의는 책8에 있는데 1696년에 묘례(廟禮)와 과거(科擧) 규정 등에 관해 올린 것이다. 제문은 책9에 있는데 종묘(宗廟) 축문(祝文) 등과 외형 이경억(李慶億), 동생 신우상, 이단하(李端夏), 조사석(趙師錫) 등에 대한 것이고, 의주부윤 시절 지은 제문이 록(錄)과 서(序) 뒤에 또 실려 있다. 책6에 실린 시장은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에 대한 것이다. 서후와 발은 책6에 권상운의 기행시에 적은 서후, 책9에 동생 신상우의 『풍악시권(楓岳詩卷)』, 권상운의 서관기행시(西關記行詩)에 적은 제후, 동생 신우상의 시에 적은 제발이 따로따로 실려 있다.
나머지 책9에 실린 글을 보면, 서(序)는 「감구서(感舊序)」와 송서(送序), 자신이 중간한 신용개의 『이요정집(二樂亭集)』에 대한 후서(後序) 등이고, 기(記)는 육오당(六吾堂), 개석당(介石堂) 등에 대한 기문이며, 록(錄)은 1654년에 영천, 안동, 청부 등을 유람하고 지은 「남유록(南遊錄)」이다. 또 부친 신량(申湸), 시조 신성용(申成用) 등에 대한 묘도문(墓道文)과 부친의 행장, 조부 신응구(申應榘)의 유사(遺事) 등이 실려 있다. 맨 뒤에 1689년 장씨(張氏)의 중전 봉책을 위한 진주부사(陳奏副使) 임명을 사양한 뒤 심리(審理)를 받고 올린 원사(原辭)가 실려 있다.
책10은 부록 성격의 권상운이 지은 행장이 있고, 그 뒤에 다시 유문으로 서(書)가 들어 있고, 다시 부록으로 「현석문인박상순소록(玄石門人朴尙淳所錄)」, 「부만퇴헌유사(附晚退軒遺事)」, 저자의 약력 기술, 「부잡록(附雜錄)」이 실려 있다. 서는 박세채, 남구만(南九萬), 이경억, 이단하, 윤지선(尹趾善), 최석정(崔錫鼎) 등 주로 소론계 인물들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가 인물별로 실려 있다. 박세채에게는 남구만의 장희재(張希載) 처리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였고, 남구만에게는 송금(松禁)의 문제 등을 의논하였다. 이렇듯 정치와 정책 현안을 의논하는 편지들과 안부 편지들이 대부분이다.
「현석문인박상순소록」은 박세채의 문인 박상순(朴尙淳)의 소찰(小札) 가운데 1696년 장희재 노비 업동(業同)의 국문을 반대한 일 등이 언급된 것을 정리한 것이다. 「만퇴헌유사」는 저자의 조부 신응구에 대해 저자가 지은 것으로, 우계(牛溪) 문인(門人)으로서의 활동 등이 적혀 있다. 그 뒤에 1696년 가을까지 저자의 약력을 기술한 글이 실려 있는데 작자는 미상이고, 또 그 뒤의 잡록(雜錄)은 1683~1687년에 저자가 선조들의 묘표(墓表)를 만들었던 과정을 약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