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권 20책(원집 31권 15책, 속집 10권 5책). 활자본. 제자들이 그의 유고를 모아 간행한 듯하나 자세한 기록이 없다.
≪심재집≫에는 1966년에 쓴 조규철(曺圭喆)의 발이 있다. 원집 권1에 부 2편, 권2∼4에 시 495수, 권5∼12에 서(書) 254편, 권13∼15에 잡저 36편, 권16 · 17에 서(序) 57편, 권18∼20에 기(記) 76편, 권21에 발 23편, 서후(書後) 11편, 권22에 잠 1편, 명 9편, 자사(字辭) 5편, 상량문 6편, 뇌사(誄詞) 1편, 애사 6편, 축문 1편, 제문 22편, 권23에 비 9편, 권24에 묘지명 26편, 권25에 묘갈명 25편, 권26 · 27에 묘갈 42편, 권28에 묘표 23편, 권29에 행장 7편, 행록 2편, 권30에 전 3편, 유사 2편, 권31은 잡지이다.
≪심재집≫ 속집 권1에 시 122수, 권2 · 3에 서(書) 127편, 잡저 5편, 권4에 서(序) 14편, 기 46편, 권5에 발 1편, 서후 5편, 잠 1편, 명 6편, 상량문 2편, 뇌문 1편, 애사 1편, 축문 3편, 제문 3편, 비 5편, 묘지명 10편, 묘갈음기(墓碣陰記) 4편, 권6에 묘갈명 27편, 묘표 5편, 행장 1편, 전 2편, 권7∼10은 부록으로 만장 · 제문 · 가전(家傳) · 묘표가 수록되어 있다.
≪심재집≫의 시는 독서와 학문 등 유자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황(李滉)의 <산거사시 山居四時> 16절구를 읽고 마음이 움직여 그 가운데에 여름시 4수만 읊은 것이 있다. 극락암에서 독서하다가 깊은 밤 경쇠소리를 듣고 지은 시, 특히 이기심성(理氣心性)에 대하여 7언절구 5수를 지어 곽종석(郭鍾錫)에게 올린 시는 그의 학자적 면모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심재집≫은 선현의 유적을 찾아 기행하며 지은 시들이 많다. 두류산을 기행하며 천왕봉, 조식(曺植)의 유적지를 찾아 읊은 시를 비롯하여 이황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지은 시도 있다. 이밖에 <춘일유작 春日有作> · <유회 有懷> · <모춘 暮春> 등의 시에서는 서정적 감정을 계절의 변화에 담아 읊었다. 문학사에서는 <최면암익현만 崔勉庵益鉉輓>이라는 시가 거론되었다. 그 대상인물에 대한 적절한 평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재집≫ 서는 성리학 · 문학에 대해 당시의 대가들과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장복추(張福樞) · 김흥락(金興洛) · 이만구(李種杞)에게는 존장의 예로써 안부를 물은 편지이며, 정재규(鄭載圭) · 허유(許愈) 등과는 학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글이다.
조긍섭은 곽종석에게는 몇 차례의 왕복서한에서 성리에 대해 논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1900년에 보낸 두 번째 편지는 가벼운 안부에 이어 지난 번 편지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뒤이어 별지에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한 뒤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27조에 걸쳐 학자와 성인의 관계, 이기 · 심성 등 성리학의 핵심적이고 다양한 방면에 관한 내용을 심각하게 다루었다.
조긍섭이 김택영(金澤榮)에게 보낸 14편의 편지 속에는 문학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1913년에 보낸 편지는 꽃과 열매의 관계를 통하여 도와 문의 관계를 밝힌 내용이다. 김택영은 조긍섭의 문장을 풍신(風神)의 변화를 위주로 하여 열매보다 꽃에 지나치게 중점을 둔 태도라 하며 비판하였다.
이밖에 사단칠정에 관한 논설과 김택영이 ≪삼국사기≫ 교정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마땅하지 않게 여기며 자기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과 김부식(金富軾)으로부터 이제현(李齊賢) · 김창협(金昌協) 등에 이르는 문학사상의 인물을 논한 내용, 김택영의 ≪한사경 韓史綮≫에 대한 견해 등이 있다.
조긍섭이 변영만(卞榮晩)에게 답한 편지에도 문의 본질과 역대의 문장가에 대해 논한 내용 등이 있다. 그리고 이규준(李圭唆)과 상수(象數) · 역학(曆學)에 관해 논의한 내용, 이건승(李建昇)과 당시 문인 · 학자들에 관해 논한 내용, 이건방(李建芳)과 도덕과 문장에 대해 논한 편지 등이 있으며, 이밖에 당시 영남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심재집≫ 잡저의 <독역수기 讀易隨記>는 주역의 건(乾) · 곤(坤) · 둔(屯) · 몽(蒙) 등의 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신명사도오자변 神明舍圖五字辨>은 조식의 <신명사도>의 ‘국군사사직(國君死社稷)’이라는 글자에 대한 변증이다. <심문 心問> 상 · 중 · 하, <격물설 格物說> · <사단칠정설> 등이 있다. 모두 저자의 유학적 주장과 학문적 성과를 알 수 있는 글이다. <곤언 困言>은 옛글을 읽다가 남겨놓은 기록이다. 당시 유자로서 관심을 가지는 모든 분야를 포괄한 내용이다. 도의 존재, 한비자(韓非子)에 대한 의론, 문학, 오륜(五倫), 묵자(墨子)의 겸애설(兼愛說) 등의 다양하고 광범한 내용이 담겨 있다. 문집 출간에 앞서 독자적으로 인간된 저술 중의 하나이다.
≪심재집≫ 잡지도 그 가운데에 성리 · 경전에 관한 유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말기 유학과 문학의 연구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저서이다. 규장각도서 · 장서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