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연활자(鉛活字)는 조선시대 금속활자 중 1436년(丙辰)에 주자소(鑄字所)에서 납(鉛)을 녹여 만든 병진자(丙辰字) 금속활자이다. 『자치통감강목』 139권의 주조와 인쇄에서 대자(大字)인 병진자가 쓰인 바 있다. 병진자는 세계 최초의 연활자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정의
한국서지학 인쇄 · 출판 영역에서,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중 1436년에 주자소에서 납을 녹여 만든 병진자 금속활자.
내용
병진자의 활자 크기는 크고 작은 것에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세로 2.3cm, 가로 2.9cm, 높이 0.7~0.9cm’의 크기로 추정된다. 『자치통감강목』의 인쇄에서 중간 글자에 해당하는 ‘목(目)’의 인쇄에 동원된 옛 글자는 갑인자(甲寅字)의 중자(中字: 1.5×1.5×0.7cm)와 소자(小字)가 사용되었다. 『자치통감강목』의 주조와 인쇄에서는 대자인 병진자가 쓰인 바 있다. 『자치통감강목』 139권은 워낙 거질(巨帙)이라 그 인쇄 · 간행은 1438년에 완료되었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는 거의 모두 동활자(銅活字)로 주조(鑄造)되었다. 조선 초기의 계미자(癸未字),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 계열 활자들을 비롯하여 을해자(乙亥字) 등등이 모두 동활자이다. 『자치통감강목』 총 139권의 큰 글자인 병진자만 유일하게 납을 녹여 만든 연활자임이 주목된다. 연활자의 재료인 납은 용해(溶解)되는 온도가 낮아 큰 활자인 대자의 주조에 용이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납은 그 강도가 단단하지 못하고 물러서 조선 초기 금속활자의 주조에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진자(丙辰字)’라는 큰 글자를 주조하는 데에 납이 쓰인 것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자치통감강목』이라는 거질(巨帙)의 인쇄에 필요한 대자를 주조하는 데 소요되는 대량의 금속 물량(物量)을 납으로 조달하는 방안이 훨씬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채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448년(세종 30)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인쇄하여 반포할 때, 한글과 한자의 대자는 모두 목활자(木活字)를 사용하였다는 점 또한 주목되는 사항이다.
의의와 평가
신연활자는 19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1880년에 일본에서 최지혁(崔智爀)의 글씨를 바탕으로 신연활자가 주조되었고, 이 활자를 기반으로 1883년에 박문국(博文局)이 설치되고 신문 · 서책 등이 광범위하게 인출되었다. 이에 따라 지배 계층뿐만 아니라 서민 계층까지 인쇄 · 출판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국민의 계몽과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따라서, ‘연활자’와 ‘신연활자’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원전
- 『世宗實錄』 卷74, 1436년 7월 29일 條.
단행본
- 윤병태, 『조선조활자고: 대형활자』(연세대학교 도서관학과, 1976)
- 청주고인쇄박물관, 『한국의 옛 인쇄문화』(청주고인쇄박물관, 2009)
- 남권희, 『한국의 금속활자 발달사: 조선시대』(경북대학교출판부, 2018)
논문
- 남권희, 「조선초기 금속활자의 주조와 조판에 관한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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