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9장의 필사본이다. 권수제는 ‘광무삼년육월일 경상남도양산군읍지(光武三年六月日 慶尙南道梁山郡邑誌)’인데, 이를 통해 편찬 연도를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결총(結總), 창고(倉庫), 군기(軍器), 관애(關隘),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공해(公廨), 궐패(闕牌), 누정(樓亭), 도로,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등으로 구성하였다.
책의 분량은 많지 않으나, 군과 관련한 항목을 골고루 설정하여 내용을 풍부하게 담았다. 건치연혁 항목에 따르면,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지금의 [양산시]은 신라 문무왕 때 삽량주(歃良州)라 하였다가 경덕왕 때 양주(良州)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다시 양주(梁州)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태종 대에 양산군이라 명명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동래(東萊)에 합쳤다가 1603년(선조 36)에 다시 양산군으로 분리되어 경주진(慶州鎭)에 소속되었다. 동래부 금정산성 축성 후에는 동래부진에 소속되었다.
산천 항목에서는 성황산(城隍山)을 비롯하여 취루산(鷲樓山), 원적산(圓寂山), 금정산(金井山), 증산(甑山), 칠점산(七點山), 황산강(黃山江) 등을 소개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읍내방(邑內坊) · 상동방(上東坊) · 하동방(下東坊) · 좌이전방(左耳田坊) · 대상하동방(大上下同坊) · 상서방(上西坊) · 하서방(下西坊) · 상북방(上北坊) · 하북방(下北坊) 등 9개 방을 기록하였다. 호구 항목에는 3,204호에 남자가 8,523명, 여자가 6,053명이라고 적어 놓았으며, 전부 항목에는 1831년(순조 31) 기준으로 원장(元帳)에 전답이 3,689결 44부 2속, 한전(旱田)이 1,415결 13부 5속, 수전(水田)이 2,274결 51부라고 써넣었다. 이외에 대동(大同)과 화세(火稅), 균청결(均廳結), 결전(結錢), 세전(稅錢), 요역(徭役) 등 조세의 규모를 작성하였다.
성지 항목에는 성의 둘레가 주1이었음을 기재하였고, 창고 항목에는 읍창(邑倉)과 감동창(甘同倉)을 기록하였다. 단묘 항목에는 문묘와 사직단, 성황단, 여제단(厲祭壇), 가야진제단(伽倻津祭壇), 충렬사(忠烈祠) 등의 위치와 내력을 써넣었다. 불우 항목에는 통도사(通度寺) 등 주변 사찰의 위치를 적어 놓았다. 고적 항목에서는 임경대(臨鏡臺)와 두연대(斗淵臺), 강학대(講學臺), 비암(比巖) 등을 소개하였다.
토산 항목에는 사철(沙鐵), 은어와 숭어 등을 언급하였고, 진공 항목에는 인삼과 흰 작약, 맥문동(麥門冬), 백복령(白茯笭), 과루인(苽蔞仁), 당귀 등의 약재명을 기록하였다. 환적 항목에는 양산 지역에 부임하였던 역대 수령의 명단과 임명 및 퇴임 시기를 적어 놓았다. 과거 항목에는 양산 출신의 과거 합격자 명단을 문과(文科)와 생진(生進), 무과(武科) 등으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인물 항목에는 양산 출신의 이름난 인사들의 이름과 관력(官歷) 등을 기록해 놓았다.
1899년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추진된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한 읍지로, 19세기 말 양산군의 사정을 파악하는 기초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