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류의 하중도(河中島)로 홍수에도 침수되지 않는 두 개의 섬이 밤섬(栗島)과 여의섬(汝矣島)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밤섬에 관하여 “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친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만, 여의섬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조선시대에 밤섬은 행정구역상 한성부에 속하여 서강방(西江坊) 율도계(栗島契)였는데, 여의섬은 금천현(衿川縣) 하북면(河北面)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의섬은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汝栗里)가 되고, 뒤이어 1936년 경성부는 행정구역 확장을 위해 경성부로 편입시켰다. 1920년 대에 이곳은 활주로 시설만을 갖춘 초기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해방 후에는 한국공군의 발상지가 되면서 공군본부가 여의도기지에 자리잡게 된다.
본격적인 여의도 개발은 1966년 대규모의 수해로 인한 여의윤중제 건설과 김수근의 도시 선형계획(線形計劃)과 함께 착수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 들어서 윤중제(輪中堤) 안을 매립하여 국회의사당과 아파트건설, 5 · 16광장과 공원이 들어서면서 제2의 도심(都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공원에 인접한 한강 둔치의 체육 · 오락 · 휴식 시설이 함께 갖추어져 있는 까닭에 서울시내 유수의 청소년 모임의 장이 된다. 공원 주변에는 KBS · 동아일보사 · LG사옥 등의 방송과 증권업무의 특화된 건물들이 모여 있으며, 여의도의 한강유람선이 발착하는 노들나루, 63빌딩 등과 더불어 서울의 관광명소의 한 곳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인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기도 하였다.
자연생태의 숲, 문화의 마당, 잔디마당, 한국 전통의 숲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소나무 등 121종을 이식하였으며, 주변에는 폭 4∼6m와 2.4㎞의 자전거도로, 폭 2m와 3.9㎞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시민의 휴식공간과 문화행사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