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융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 지공거로 과거시험을 자주 주관하였고 한림학사, 내의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공거, 대광, 내의령, 총한림, 평장사
  • 주요 작품연곡사현각선사비, 지곡사진관선사오공탑비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정선용 (서강대박물관 학예사, 한국고대사)
  • 최종수정 2024년 09월 0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왕융은 고려 전기에 지공거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고 한림학사, 내의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광종부터 성종 때까지 약 3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지공거를 역임하면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다. 그동안 대상과 대광, 한림학사, 총한림, 판총한림, 내의령, 병부령, 평장사 등의 관직도 역임하였다.

정의

고려 전기, 지공거로 과거시험을 자주 주관하였고 한림학사, 내의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왕융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주요 활동

왕융은 955년(광종 6) 대상(大相)의 지위로 후주(後周)에 사신으로 가서 방물(方物)을 바쳤다는 기록에 처음 보인다. 그는 그 뒤에 광종부터 성종 때까지 약 3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지공거(知貢擧)과거(科擧)를 주관하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966년(광종 17)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지공거가 되어 최거업(崔居業) 등 진사(進士) 2명을 뽑았고, 972년(광종 23)에는 동지공거 김니(金柅)와 함께 양연(楊演)·유방헌(柳邦憲) 등 진사 4명을 뽑았으며, 이듬해에는 백사유(白思柔) 등 진사 2명을 뽑고, 974년(광종 25)에는 한인경(韓藺卿) 등 2명의 진사를 뽑았다.

그리고 977년(경종 2)에는 왕의 친시(親試)로 행해진 과거에서 독권관(讀卷官)이 되어 고응(高凝) 등 6명의 진사를 뽑았으며, 979년(경종 4)에는 원징연(元徵衍) 등을 진사로 뽑았다,

983년(성종 2)에는 최행언(崔行言) 등 진사 5명을 뽑고, 이듬해에 이종(李琮) 등 진사 3명을 뽑았으며, 985년(성종 4)에는 진량(秦亮) 등 3명을 진사로 뽑았다. 또한 988년(성종 7)에는 이위(李緯) 등 진사 4명과 의업(醫業) 2명을 뽑았으며, 다음 해에는 최득중(崔得中) 등 진사 18명과 명경업(明經業) 1명 및 복업(卜業) 2명을 뽑고, 994년(성종 13)에는 복시(覆試)에서 최원신(崔元信) 등 진사 8명과 명경업 9명을 뽑았다.

왕융은 이외에도 975년에 대광(大匡) 내의령 겸 총한림(內議令兼摠翰林)으로 있으면서, 경종(景宗)이 즉위와 함께 왕비로 맞이한 헌승황후(憲承皇后)의 아버지 정승공(政承公: 신라 경순왕)을 상보(尙父)로 책봉하는 조서를 찬(撰)하였다. 997년(성종 16) 10월에는 성종(成宗)목종(穆宗)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왕융은 평장사(平章事)로 있으면서 사면령(赦免令)의 반포를 요청하였다.

또한 왕융이 찬(撰)한 비문(碑文) 가운데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는 979년(경종 4년)에 찬한 연곡사(鷰谷寺)의 현각선사비(玄覺禪師碑)와 981년(경종 6)에 대광(大匡) 내의령 판총한림 겸 병부령(內議令判摠翰林兼兵部令)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아 찬술한 지곡사(智谷寺)의 진관선사오공탑비(眞觀禪師悟空塔碑)가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보한집(補閑集)』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 - 허흥식, 『한국중세사회사자료집』 (아세아문화사, 1976)

  • - 허흥식, 『고려의 과거제도』 (일조각, 2005)

  • 논문

  • - 강희웅, 「고려초 과거제도의 도입에 관한 소고」 (『한국사논문선집』 Ⅲ, 일조각, 1976)

  • - 이기동, 「나말여초근시기구와 문한기구의 확장」 (『역사학보』 77, 역사학회, 1978)

주석

  • 주1

    : 임금이 몸소 과장(科場)에 나와 시험 성적을 살피고 급제자를 정하던 일. 또는 그 시험. 우리말샘

  • 주2

    : 전남 구례군 연곡사에는 현재 비의 조각만 남아 있고 146자만 남은 비문의 탁본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주3

    : 경남 산청군 지곡사에는 현재 비가 남아 있지 않고 탁본만 전한다. 비문은 의천이 편찬한 『석원사림(釋苑詞林)』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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