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초기, 태종 대와 세종 전반기에 설치되었던 대언사의 5번째 관직.
설치 목적
임무와 직능
그런데 1405년(태종 5)에 이르면 그동안 형조의 관원이 아닌 타관의 관원이 지사를 겸직하여 노비 소송을 전담하던 형조도관을 형조의 속사로 편입하면서 정3품 당상관인 형조 우참의(右參議)가 전적으로 개칭된 형조의 속사인 도관사(都官司)의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언사에 동부대언(同副代言)을 1명 더 새로 두어 형방으로 하여금 정비된 형조의 일을 맡도록 하였다.
변천사항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세종실록(世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논문
- 이동희, 「조선 세종대 승정원과 활동과 그 정치적 의미」(『역사학보』 138, 역사학회, 1993)
- 이동희, 「조선 태종대 승정원의 정치적 역할」(『역사학보』 132, 역사학회, 1991)
- 한충희, 「조선초기 승정원연구: 실제기능과 통치기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한국사연구』 59, 한국사연구회, 198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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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전기에, 군무(軍務)를 통할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태종 원년(1401)에 의흥삼군부를 고친 것으로, 태종 3년에 삼군도총제부로 개편하면서 따로 독립하였다가 5년에 폐하여 병조에 속하게 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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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도장이나 관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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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초기에, 육조(六曹)에 둔 정삼품 벼슬. 태종 5년(1405)에 전서가 폐지되고 좌참의(左參議)와 함께 개설되었다. 이후에 좌ㆍ우참의를 참의(參議)로 바꾸고 정원을 줄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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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전기에, 형조에 속하여 노비의 문서와 호적 및 그 소송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태종 5년(1405)에 두었다가 세조 때 변정원(辨定院)으로 고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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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전기에, 승정원의 대언 가운데 끝자리인 정삼품 벼슬. 뒤에 동부승지로 고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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