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설화」는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관한 설화이다. 이성계의 행적과 조선 개국에 얽힌 숨은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왜적을 물리친 그의 신화 영웅적인 능력을 칭송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신하로서 고려 왕조를 멸망시킨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한 이야기가 있다.
「이성계 설화」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대동야승(大東野乘)』 · 『동사강목(東史綱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성호사설(星湖僿說)』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의 자료에 상세하게 전한다.
인물전설(人物傳說)의 경우 대체로 언급되는 인물에 대하여 각편마다 평판이 일치하거나 비슷한 경향을 띠게 되는데, 「이성계 설화」의 경우는 상당히 다른 층위(層位)를 가지면서 전개된다.
「이성계 설화」가 전승되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이성계는 신화 영웅적 능력을 갖춘 위대한 인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신하로서 임금을 벤 배격(排擊)하여야 할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며, 민중 영웅을 죽이고 왕이 된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성계를 신화적 능력을 갖춘 위대한 인물로 묘사한 설화는 그의 빼어난 능력이 왕조의 창업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조선 왕조의 건국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침으로써 조선의 정통성(正統性)을 확보하자는 정치 선전(政治宣傳)의 하나로 창작된 것들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설화들은 의도적으로 창작되고 거듭 전승되면서 폭넓게 수용된다. 그리고 건국의 시조(始祖)들을 찬양하고, 조선 왕조의 창업(創業)을 합리화(合理化)하자는 내용의 설화를 노래로 창작한 것이 바로 「용비어천가」이다.
이성계는 고려의 영웅들처럼 말 잘 타고 활 잘 쏘며, 용맹(勇猛)이 뛰어난 무장(武將)이다. 그가 남북 외적과 싸워 나라를 구출한 활약상(活躍相)을 다룬 대목이 상당히 많다. 특히, 왜구(倭寇)를 토벌할 때의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 가장 박진감이 넘치며 흥미롭다. 설화마다 이성계의 용맹성과 뛰어난 활 솜씨 · 현명함을 강조한다.
이성계가 말을 타고 돌로 된 벽을 올라가 왜구를 무찔렀는데, 이와 같은 그의 활약은 다른 사람이라면 말을 몇 번 뛰어오르게 하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뛰어난 활 솜씨를 알리는 여러 각편들은 주로 왜장(倭將) 아지발도와의 싸움에서 상세히 묘사된다.
‘인월(引月)’ · ‘피바위’ 등의 지명은 이성계의 신통력(神通力)과 관련되어 있는데, 왜구와의 전투가 밤까지 이어져 달이 산을 넘어가려 하자 이성계가 달을 끌어올려 대승(大勝)을 거두어서 그 지역을 인월이라 하고, 이성계의 화살을 맞은 왜구 대장 아지발도의 피가 바위를 붉게 물들여 이 바위를 ‘피바위’라 한다. 패주(敗走)하는 적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고 살려 주는 덕장(德將)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주로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의 행적을 다루면서, 외적을 물리치고 민족을 위기에서 구출하였기에 새 왕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정통성을 확보하였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지향과는 대조적으로 이성계가 등장하는 다른 설화에서는 이성계를 ‘신하로서 임금을 벤[以臣伐君]’ 패륜적인 인물로 평가하며, 그에 대한 적대감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경우, 고려 왕조를 멸망시킨 이성계에 대한 적대감이 노골적(露骨的)으로 표방되어 있는 각편이 상당수 있으며, 개성 사람들의 이성계에 대한 반발을 생활 문화에 반영한 삽화(揷話)도 많다.
조선에 나와서 벼슬하라는 이성계의 요청을 거부하고 72명의 선비가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서 평생을 나오지 않았다는 설화에서 ‘두문동’은 말 그대로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겠다는 고려 유신(遺臣)들의 의지를 표명해 주고 있다.
‘부조현(不朝峴)’과 ‘갓걸재’ 등의 지명전설(地名傳說)도 조선에 조회(朝會)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는 갓도 벗어서 걸어 두고 고개 넘어 숨어 버린 선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이성계 설화」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이성계가 기해생 돼지띠이므로 돼지고기로 국을 끓이고는 ‘성계탕’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나, 떡국을 만들 때 떡을 칼로 가지런히 썰지 않고 손으로 수제비를 뜨듯 둥글게 떼어 넣고는 ‘조랑떡국’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이성계의 목을 비트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 계통의 이야기들은,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고 왕이 되자 그의 행위에 대하여 반발하는 유신들과 개성 사람들의 태도를 반영한 것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忠節)과 이성계의 부도덕함을 강조하며 분풀이하는 내용의 것이 대종(大宗)을 이룬다. 이성계에 대한 또 다른 평가를 보여 주는 설화로 다음과 같은 것도 전하여진다.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산신(山神)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런데 유독 지리산의 여산신은 그를 지지하지 않고 민간의 영웅인 우투리를 내세운다. 그러자 이성계는 술수(術數)를 써서 당시에 왕으로 예정되었던 민중 영웅인 우투리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이 설화는 「아기장수 설화」의 유형과 같은 것이다.
또 다른 각편으로 이성계가 전국을 돌아다닐 때 산신회를 엿들었는데, 그 내용은 지리산의 여산신은 정 도령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 도령을 없애려고 찾아다녔는데, 정 도령은 도롱이를 쓰고 다니면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하여 잡지 못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는 이성계가 진정한 민중의 왕이 아니며, 진정한 인물은 따로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설화는 도참서의 영향을 받아서 형상화된 것으로서 사회가 어수선할 때나 변혁기(變革期)에는 각각 해당하는 인물을 ‘정진인’ · ‘ 홍경래(洪景來)’ 등으로 달리 바꿔 가면서 나타나 일정하게 작용하였다.
이 밖에도 퉁두란과 의형제를 맺었다가 대결하여 죽이거나, 주원장(朱元璋)과 대립하고 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성계에 관한 부정적 · 긍정적 인식이 동시에 표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