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이다. 『이씨가보(李氏家譜)』에 의하면, 그림으로 이름이 났고, 특히 초상을 잘 그려 붓을 들고 한번 그리면 터럭 하나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17세기 전반의 중요 도감에서 활약했다. 1604년(선조 37)에는 주청부사(奏請副使)로 가는 민인백(閔仁伯)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8년(인조 6), 집경전(集慶殿)에 있던 태조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의 영정을 수리한 공으로 동반(東班) 6품 실직을 제수받았다.
문인 관료의 별서도(別墅圖)를 제작하여 실경산수화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던 이호민(李好閔) · 이경엄(李景嚴) 부자의 주1를 묘사한 「사천장팔경도(斜川庄八景圖)」[1617, 국립중앙박물관]가 대표적이다. 「세년계회도(世年契會圖)」[1604, 국립중앙박물관]는 이호민의 과거 급제 동기 8명의 아들들의 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모임을 그린 것이다. 또한 이정구(李廷龜)의 부탁으로 「섬강도(蟾江圖)」를, 이식(李植)의 요청으로 「동계팔경도(東溪八景圖)」를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