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흠 ()

회화
인물
조선시대, 문인 관료의 별서도를 그린 화가.
이칭
경립(敬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0년(선조 3)
사망 연도
1631년(인조 9)
본관
태안(泰安)
주요 작품
사천장팔경도, 세년계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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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신흠은 조선시대 문인 관료의 별서도를 그린 화가이다. 별서도 제작을 통해 실경산수화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호민·이경엄 부자의 별서를 그린 「사천장팔경도」와 그들의 모임 장면을 묘사한 「세년계회도」가 전한다.

정의
조선시대, 문인 관료의 별서도를 그린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이다. 『이씨가보(李氏家譜)』에 의하면, 그림으로 이름이 났고, 특히 초상을 잘 그려 붓을 들고 한번 그리면 터럭 하나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요 활동

17세기 전반의 중요 도감에서 활약했다. 1604년(선조 37)에는 주청부사(奏請副使)로 가는 민인백(閔仁伯)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8년(인조 6), 집경전(集慶殿)에 있던 태조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의 영정을 수리한 공으로 동반(東班) 6품 실직을 제수받았다.

문인 관료의 별서도(別墅圖)를 제작하여 실경산수화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던 이호민(李好閔) · 이경엄(李景嚴) 부자의 주1를 묘사한 「사천장팔경도(斜川庄八景圖)」[1617, 국립중앙박물관]가 대표적이다. 「세년계회도(世年契會圖)」[1604, 국립중앙박물관]는 이호민의 과거 급제 동기 8명의 아들들의 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모임을 그린 것이다. 또한 이정구(李廷龜)의 부탁으로 「섬강도(蟾江圖)」를, 이식(李植)의 요청으로 「동계팔경도(東溪八景圖)」를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이은하, 「『사천시첩』의 체제와 회화사적 의미」(『미술사학연구』 281, 한국미술사학회, 2014)
권혁산, 「조선중기 『녹훈도감의궤』와 공신화상에 관한 연구」(『미술사학연구』 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별장과 비슷하나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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