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규장각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규당(圭堂), 탄재(坦齋)
  • 후경(厚卿)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갑오농민운동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91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6년(헌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세창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8월 23일
이중하 선전비 미디어 정보

이중하 선전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규장각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후경(厚卿), 호는 규당(圭堂) · 탄재(坦齋). 현감 이인식(李寅植)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좌랑(佐郎)으로서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가 되었다.

1885년 공조참의 · 안변부사가 되었다가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로서 청국측 대표 덕옥(德玉) · 가원계(賈元桂) · 진영(秦瑛) 등과 백두산에서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지계(土門江地界)를 심사하였다. 국경 문제를 놓고 담판을 벌였으나 견해차가 심한데다 청국측이 강압적인 태도로 나와 회담은 실패하였다.

1886년 덕원항감리(德源港監理)가 되었다가 1887년 다시 토문감계사가 되어 회담을 재개했는데, 청국측이 조선측의 주장을 거절, 위협하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며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1890년 이조참의가 되어 충청도암행어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894년 외무부협판 · 의정부도헌이 되었고,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경상도선무사(慶尙道宣撫使) · 영월영천안핵사(寧越永川按覈使) · 경상도위무사(慶尙道慰撫使)로 진압에 앞장섰다. 이 해 말 김홍집내각의 내무부협판이 되어 갑오농민운동 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듬해 김홍집내각이 무너지고 지방제도가 개편되자 대구부관찰사로 임명되었다. 관찰사 재직시 을미의병 봉기로 많은 관리가 희생되었으나 이중하는 민심을 얻어 무사하였다.

1898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의 요구로 성립된 중추원에서, 무기명투표로 11명의 대신후보자를 선출할 때, 2위로 천거되기도 하였다. 1903년 외무부협판 칙임2등(勅任二等)이 되어 문헌비고찬집당상(文獻備考纂輯堂上)을 맡았다. 그 뒤 평안남도관찰사 · 경상북도관찰사 · 궁내부특진관을 거쳐 장례원경(掌禮院卿)이 되었다.

1909년 일진회(一進會)대한제국과 일본의 '정합방론(政合邦論)'을 주장하자 민영소(閔泳韶) · 김종한(金宗漢) 등과 국시유세단(國是遊說團)을 조직하여 그 해 12월 5일 원각사(圓覺社)에서 임시국민대연설회를 열고, 그 주장이 부당함을 공격하였다. 또, 1910년 규장각제학으로 한일합방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지방관리 재직시 청렴하고 강직한 인품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규당문집』 · 『감계전말(勘界顚末)』 · 『감계일기(勘界日記)』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일성록(日省錄)』

  • - 『대한제국관인이력서(大韓帝國官人履歷書)』

  •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 『매천야록(梅泉野錄)』

  • - 『음청사(陰晴史)』

  • - 『관보(官報)』

  • - 『역주 감계사등록』하(이왕무 외, 동북아역사재단, 2010)

  • - 친환경농업박물관(www.sam.go.kr)

주석

  • 주1

    : 이조에 속한 정삼품의 당상관. 이조 참판의 아래이다. 우리말샘

  • 주2

    : 구한말에, 통리군국사무아문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둔 벼슬.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둔, 사헌부의 종이품 벼슬. 정사를 논하고 백관(百官)을 감찰하며 기강을 확립하는 따위의 업무를 맡아보았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큰 재해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왕명을 받들어 재난을 당한 지방의 민심을 어루만져 안정시키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5

    : 조선 후기에, 지방에서 발생하는 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보내던 임시 벼슬. 우리말샘

  • 주6

    : 백성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기 위하여 지방에 보내던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7

    : 고려 시대에, 주(州)와 부(府)에 둔 벼슬. 성종 때 두었다가 목종 때 없앴다. 우리말샘

  • 주8

    : 융희 3년(1909) 7월에 대한 제국을 일본이 통치해야 할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 조직된 친일 단체. 여론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지방 유세 활동으로 재정에 문제가 생겨 결국 ‘정우회’에 흡수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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