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서 ()

근대사
제도
조선 말기, 세곡 운반을 주관하던 부서.
이칭
이칭
전운영, 전운소
제도/관청
설치 시기
1883년(고종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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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진운서는 조선 말기, 세곡 운반을 주관하던 부서이다. 전세와 대동미 등 세곡의 징수와 운송, 수납을 관리하기 위해 1883년에 설치된 부서로 그 책임자는 전운사였다. 각종 명목의 잡세미도 징수하여 운송하였으며, 운송료인 선가(船價)를 농민에게서 징수하는 등 협잡과 탐학이 많아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그 혁파를 주장하였다.

정의
조선 말기, 세곡 운반을 주관하던 부서.
설치 목적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 등 세곡의 징수와 운송, 수납을 관리하기 위해 1883년(고종 20)에 설치된 부서이다. 전운서의 책임자는 전운사였다.

기능과 역할

조창(漕倉)의 공미를 징수하는 책임과 권한이 있었는데, 전세와 대동미 등 일반 세곡도 운반하였고, 각종 명목의 잡세미를 징수하여 화륜선으로 운송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 전운사 조필영은 전라도 각 군의 세미를 서울로 운반할 때 부족분을 다시 징수하였고, 인천에서 일본상인에게 규정액 이상의 선가미(船價米)를 판매하였는데, 그에 따른 부족액을 농민들에게 다시 받아 냈다.

역사적 관련 사항

고부 농민 봉기 직후인 1894년(고종 31) 2월에 백산으로 이동한 전봉준은 동학농민군들에게 함열의 조창에 나아가 전운영을 격파하고 전운사를 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다. 황현은 조필영이 전운사로 부임한 뒤 명목을 추가하고 세금에 세금을 가산하여 3년의 짧은 기간에 일약 소론갑부가 되었다고 평가하였고, 전라감사의 군사마인 최영년도 고부 농민 봉기는 전운사의 무분별한 징수에서 기인한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농민군 지도부에 있던 오지영도 봉기의 발단이 된 전운영 혁파 요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농민군들은 1차 봉기 직후 전주 화약 당시 27개 조의 ‘ 폐정개혁안’을 제출하였는데, 그 첫 번째 조항이 ‘전운소를 혁파할 일’이었다. 당시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전라도 전역을 관장하는 ‘민군의 수령’ 즉, 전봉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관하 각 군현의 농민군에게 전운영을 파괴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에도 농민군들은 전라감사에게 13개 조의 요구 사항을 보냈는데 그중 전운서를 혁파하고, 각 포구에서 사사로이 쌀을 교역하는 일을 엄금할 것을 주장하였다. 조필영은 파면되어 강진현 고금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김윤식, 『면양행견일기(沔陽行遣日記)』
『동학관련판결문집(東學關聯判決文集)』(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1994)
『동학난기록(東學亂記錄)-상』(국사편찬위원회, 1959)
정교,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단행본

나애자, 『한국근대해운업사연구』(국학자료원, 1998)
황현 저, 김종익 역, 『번역 오하기문』(역사비평사, 1994)
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금강출판사, 1980)

논문

조재곤, 「동학농민전쟁과 전운영」(『역사연구』 34, 역사학연구소, 2018)
한우근,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검토」(『역사학보』 23, 역사학회, 1964)
한우근, 「동학란 기인에 관한한 연구(상): 특히 일본의 경제적 침투와 관련하여」(『아세아연구』 7-3,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4)
吉野誠, 「朝鮮開國後の穀物輸出について」(『朝鮮史硏究會論文集』 12, 1975)
집필자
조재곤(서강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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