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혁신운동을 벌인 동학 및 천도교 지도자.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후 은신하다가 1896년에 북접계 도접주 장경화를 만나 동학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재기하였다. 손병희가 1906년 1월 귀국하면서 천도교 창건을 선포한 후 천도교 지도자로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06년에 익산대교구장에 임명되었고, 1909년에는 천도교중앙총부 이문관 서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듬해에는 전제관장에 임명되어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으로 이주하였다.
3 · 1운동이 일어나고 천도교 지도부가 운동 자금 마련을 시도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적발되었을 때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이후 조선교육회, 사상강구회와 같은 사회단체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1년 말부터 천도교 혁신파의 중심 인물로 천도교 혁신운동에 나섰다. 천도교 혁신운동의 목적은 교단의 민주적 운영을 통해 인맥 · 파벌 중심의 중앙 집중제에서 벗어나 지방 교구 중심의 자치적 운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혁신운동은 손병희의 반대와 기존 체제를 고수하려는 보수파에 밀려 좌절되었다. 천도교 혁신파는 1925년 천도교단을 이탈해 천도교연합회를 결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참고문헌
원전
- 오지영, 『동학사(東學史)』(영창서관, 1940)
논문
- 김정인, 「『동학사』의 편찬 경위」(『韓國史硏究』 170, 한국사연구회, 2015)
- 김태웅, 「1920 · 30년대 吳知泳의 활동과 『東學史』 간행」(『역사연구』 2, 역사학연구소, 1993)
- 노용필, 「오지영의 인물과 저작물」(『동아연구』 19, 서강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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