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 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90㎝, 가로 60㎝이다. 표제는 ‘좌해여도(左海輿圖)’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좌해여도』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에 제작하였다. 제작 연대를 밝혀 놓지 않아 지명 변화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가장 늦은 지명 변화는 1776년(영조 52) 충청도의 이산(尼山)을 이성(尼城)으로 개명한 것으로, 제작 상한선은 1776년이다. 그러나 1767년(영조 43)에 산청(山淸)과 안의(安義)로 개명된 경상도의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을 기록하는 등, 지명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한, 1776년에 초산(楚山)으로 개명된 이산(理山)이 이성(理城)으로 잘못 기록된 오류도 보인다.
1장의 전도와 8장의 분도로 구성하였는데, 1장의 전도는 중형으로 축소하여 그렸다. 8장의 분도는 정상기(鄭尙驥: 1678~1752) 계통의 지도를 같은 크기로 베낀 것이다. 정상기는 1740년(영조 16)대에 전국을 8장으로 나누어 지도를 제작하였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1년]과 1720년(숙종 46)대 안팎에 편찬된 그림식 고을 지도책, 길 안내책인 정리표(程里標) 등을 비교 검토하여 만든 것이었다.
좌해(左海)는 중국을 기준으로 북쪽에서 바라볼 때 ‘왼쪽 바다에 있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여도(輿圖)는 ‘수레에 담듯이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현대 지도를 가리키는 용어 중 하나이다. 따라서 ‘좌해여도’는 ‘우리나라의 지도’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같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내용의 지도가 있을 수 있다. 이 지도는 경기도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의 8장 분도와 우리나라 전도 1장 등 총 9장으로 구성하였다. 큰 종이에 지도를 그린 후 모두 12면으로 접어 지도첩으로 만들었다. 주1 축척과 지도 필사에 필요한 정보를 함경북도 여백에 설명문으로 남겼다. 또한 도별로 서울에서 각 고을의 중심지까지 걸리는 시간 거리인 일정(日程)을 기록해 놓았다.
정상기 계통의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필사본 지도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지리적, 행정적 정보를 담고 있어, 당시의 지명과 거리 측정 방식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