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한(金邦翰: 1635~169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공점(公漸), 호는 오정(鰲亭)으로 울산(蔚山) 사람이다. 저서로는 『주역집해(周易集解)』와 『오정선생문집(鰲亭先生文集)』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필사본과 신연활자본이 소장되어 있다. 필사본은 상권이 없는 불분권 2책의 결본(缺本)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다. 신연활자본은 3권 3책으로, 상경(上經)의 건(乾)부터 복(復)까지가 상권이고, 무망(无妄)부터 하경(下經)의 진(震)까지가 중권이며, 하권은 간(艮)부터 미제(未濟)까지의 하경과 「계사상전(繫辭上傳)」, 「계사하전(繫辭下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의 순으로 구성된다.
권수에는 유필영(柳必永: 18411924)의 서문[1911년]과 김방한의 자서[1678년]가 있고, 권말에는 이양오(李養吾: 17371811)의 발문[1811년], 김소락(金紹洛), 김홍락(金鴻洛), 이중식(李中稙) 3명의 발문[1911년], 정오표인 주역집해오정록(周易集解誤正錄)이 붙어 있다. 필사본 2책은 신연활자본의 중권과 하권에 해당하지만 서문과 발문, 정오표는 없다. 양자의 본문에서는 드물게 자구의 이동(異同)이 보이기도 한다.
이양오의 발문에 따르면 김방한은 7년간 원적산(圓寂山) 적수암(滴水庵)에 칩거하며 『주역』을 연구한 끝에 『주역집해』 3권을 지었고 이를 왕에게 진상하였지만 당시에는 간행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오정선생문집』에는 1688년[무진]에 『주역집해』를 진상하며 올린 「진신찬주역집해소(進新纂周易集解疏)」가 수록되어 있다. 필사본은 당시 진상한 『주역집해』로 여겨진다. 신연활자본 『주역집해』는 1911년에 김방한의 후손들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국내 주요 연구 기관과 대학교 도서관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
저자는 『주역』을 성인(聖人)이 괘와 효의 상징[象]을 통해 길흉의 이치[理]를 밝혀 점서(占筮)로써 사람들에게 추길피흉의 방도를 가르친 것으로 본다. 이(理)는 은미하여 알기 어렵기에 성인이 알기 쉬운 상(象)을 통해 이(理)를 밝힌 것이므로, 『주역』에서 상(象)과 이(理)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견해이다. 그러나 정이천의 『역전』은 상(象)에 대해, 주희의 『주역본의』는 이(理)에 대해 각기 소략한 점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역집해』를 지었다고, 본서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주역집해』에서 단순히 정이천과 주희를 중심으로 『주역』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주석들을 수집해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저자 자신이 심득한 바를 간단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주역집해』의 내용이 괴천(槐泉) 박창우(朴昌宇: 1636~1702)의 『주역전의집해(周易傳義集解)』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주역전의집해』의 권말에 실려 있는 「진주역집해소(進周易集解疏)」에는 박창우가 김방한, 유극배(柳克培)와 함께 『주역집해』를 진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권말에는 김방한이 지은 「역집해찬(易集解贊)」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참고할 만한 조선시대의 『주역』 주석서 중 하나인 동시에 17세기 조선 유학자의 『주역』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지지 않았는데, 특히 이 책과 박창우의 『주역전의집해』가 어떠한 관계인지는 앞으로 보다 상세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