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읍지』는 1791년 이후 전라도 진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 내용을 참고하면, 편찬 연도를 1791년~179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군사적 요충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군사 부문에 대한 기록들이 많고 자세하다. 명양진을 소개하면서 이순신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하였고, 이 밖에 보유하고 있는 배의 내역, 군사의 구성 및 숫자, 보유하는 군사 무기의 종류와 수량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진도군읍지(珍島郡邑誌)』는 전라도 진도군(珍島郡)[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편찬하였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2㎝, 가로 21.2㎝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주2,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주석이 쌍행으로 되어 있고, 이왕가도서(李王家圖書)의 도장이 찍혀 있다. 권수제는 ‘진도읍지(珍島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3이다.
정확한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선생안(先生案) 항목 마지막에 구강(具絳)이 ‘신해(辛亥)’에 진도군에 부임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면 구강은 1791년(정조 15)~1793년(정조 17)에 진도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따라서 읍지에 기록된 신해년은 1791년을 의미한다. 구강의 퇴임 시기가 적혀 있지 않으므로,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1908년(융희 2)에 간행되었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도로, 성지(城池),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학교, 서원(書院), 단묘(壇廟), 공해(公廨), 관애(關阨), 진보(鎭堡), 봉수(烽燧),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사찰, 누정(樓亭), 형승(形勝), 도서, 물산(物産), 진공(進貢), 상납, 호구(戶口), 전총,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요역, 창고(倉庫), 조적(糶糴), 군기(軍器), 군액(軍額), 노비, 선생안, 인물, 과환, 고적(古蹟), 책판 등으로 구성하였다.
진도 지역이 조선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 부문과 관련한 기록들이 많고 자세하다. 사례를 들어보면, 관애 항목에 “명양진(鳴洋津)은 해구(海口)가 매우 좁아 물살이 세차고 빠르며, 이순신(李舜臣)이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승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진보 항목에는 남도포(南桃浦)와 금갑도(金甲島) 두 곳에 대해, 보유하고 있는 배의 내역, 소속 군사의 구성 및 숫자 등을 기록해 놓았다. 군기 항목에는 보유 중인 군사 무기의 종류와 수량을, 군액 항목에는 진도군 소속 군사의 구성 및 숫자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조선 후기 진도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읍지이다. 진도가 가지고 있는 섬 지역으로서의 특수성과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으며, 기존 진도 지역 읍지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