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하씨(晉陽河氏)의 창녕 입향조(入鄕祖)인 하자연(河自淵)이 1425년(세종 7)에 이곳에 입향하였으며, 현재의 안채는 1761년(영조 37)에 중건(重建)하였고, 사랑채는 1898년(광무 2)에 중건하였다.
안채는 1425년경 초창(初創)하였고, 상량묵서명(上樑墨書銘)에 의하면 건륭(乾隆) 26년(신사년)에 해당하는 1761년에 중건하였다. 사랑채는 1898년에 중건하였으며, 2008년에 중수하였다.
창녕 읍내의 중앙에 위치한 진양하씨 종가는 북쪽 후면의, 얕은 야산을 배경으로, 남쪽 전면에는 국보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을 80m의 거리에 두고 있다.
입향 초기의 유형은 알 수 없으나 안채는 홑집으로 원래의 형상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조선 후기에 개축(改築)될 때 겹집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종택(宗宅)의 배치는 二자형의 안채와 사랑채의 축(築)을 중심으로 전면에 대문채, 측면에 고방(庫房)채가 더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남부 지방 전통 주거의 기본 구성 요소인 안채와 사랑채의 구성을 기반으로 튼ㅁ자형(네 채의 일자형 건물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방형을 이루고 있는 구성)으로 발전하는 중간 과정인 튼ㄷ자형 구성이다. 최근에 조성된 특이한 구성은 대문채를 들어서면서 사랑마당에서 만나는 샛문과 담장으로, 이는 주된 문화유산인 안채로 일반 관람객을 안내하기 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통적인 경계 구조 형식을 현실적으로 응용한 것이다.
일자형의 홑집(채의 깊이가 1칸인 구조)인 안채의 가장 큰 특징은 초가(草家)로 보이는 지붕이다. 이 지붕의 재료는 억새로 이런 지붕을 ‘샛집’이라 부른다. 대문채와 고방채도 동일한 재료로 구성하였다. 샛집은 볏짚으로 만든 초가와 달리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새로 만든 지붕이다. 억새를 채취하려면 별도의 인건비가 드는 것과, 볏짚보다 억세어서 배수(排水)를 위해 지붕의 경사를 더 급하고 더 두텁게 구성해야 하는 시공의 난이도 등의 단점이 있지만, 매년 지붕을 갈아야 하는 볏짚에 비해 5~10년 정도 수명이 길기 때문에 민가의 지붕 유형으로는 고급으로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지붕으로는 ‘댓집’이 있는데, 이는 낙동강 하류 주변에 간혹 보였던 유형으로 갈대를 지붕 재료로 하여 지붕의 경사가 더 급한 민가로, 이 두 유형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안채의 평면은 일자형의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민가로 3칸인 오막살이집보다는 1칸 더 규모가 큰 4칸 형식으로, ‘부엌+안방+마루+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마루가 포함되어 있는 주거 유형은 그 마루 앞의 개폐(開閉) 유무에 따라 ‘영남형’ 및 ‘동남해안형’으로 구분한다.
‘영남형’은 내륙형으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마루 앞에 벽과 문이 없이 개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남해안형’은 마루 앞에 벽과 문이 있어 태풍의 강한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구조로 주로 해안 부근에 분포하고 있다. 이 주택은 전형적인 ‘영남형’ 평면 유형이다. 이 주택의 또 다른 평면적 특징으로는 퇴(退)가 없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에는 민가에도 전면에 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주택의 평면이나 목재의 규모가 작지 않으면서도 퇴를 구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선 전기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두 방 앞과 마루 후면의 마루는 전면 양측에 기둥이 없는 동마루로, 이는 툇마루보다 깊지 않게 구성한 마루로 후대에 덧붙인 구조로 볼 수 있다. 마루 앞에 동마루가 없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안채 마루 상량(上樑)의 묵서명(墨書銘)으로 “건륭이십육년신사(乾隆二十六年辛巳)”가 남아 있다.
안채의 구조는 호박돌로 두벌대의 기단을 전면에 조성하고, 호박돌 초석(礎石) 위에 방형(方形)의 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상부는 보아지(보 받침)도 없는 납도리집으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결합 구조로 전면이 개방된 마루의 도리 하부에만 장여(長欐)를 받쳐 구조를 든든히 하였다. 지붕의 가구(架構) 구조는 3량(三樑)으로 측면 방향에서 볼 때 지붕의 단면이 삼각형을 만들며 3개의 도리가 지나가는 구조로, 1칸 깊이의 구조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가운데 도리인 종도리를 받치는 대공을 동자주(童子柱) 형식의 부재(部材)를 사용하여 또한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방의 천장은 고미 반자를 하여 만들었고, 서까래가 보이는 마루와 부엌 상부의 연등천장은 흙을 바르지 않은 ‘건새’로 구성하였다. 서까래 위에 보통 초가를 덮기 전 나뭇가지의 산자(橵子)로 엮고 하부에 흙 또는 석회석으로 앙토(仰土)를 바르지만, 여기에서는 대나무를 새끼로 역은 왯대를 정연히 깔고 하부에는 앙토를 바르지 않는 ‘건새 집’으로 구성하였다. 앙토가 떨어지는 문제는 없고 천장의 조성 형식이 잘 보여 정성이 많이 드는 집이다.
사랑채의 평면 형식은 채의 깊이가 2칸인 겹집으로 조선 후기의 특징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홑집은 따뜻한 남쪽 혹은 평야 지역, 겹집은 추운 북쪽 혹은 산간 지역에 많이 분포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공간의 구성이 다변화되어 반겹집 혹은 겹집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이 사랑채는 특히 퇴를 구성하지 않고 칸으로 공간을 구획한 근대적 특성을 보여 준다.
창녕 진양하씨 고택은 조선 전기 민가의 특별한 유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안채와 조선 후기의 반가(班家) 사랑채의 특성을 보여 주는 사랑채를 모두 간직하고 있어 경상남도 지역의 대표적 전통 가옥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