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에 있는 윤경남의 생가 주택.
건립 경위
형태와 특징
대문과 중문 사이에는 넓은 사랑 마당을 두고 북쪽으로 ㄱ자형 평면의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서쪽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남쪽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구성이다. 사랑채는 1m의 높은 기단 위에 놓인 2칸의 온돌방을 서향하게 두었고, 남향한 팔작지붕 아래의 공간은 2칸의 대청마루로 구성하였다. 이 마루는 지면에서의 높이가 193㎝로, 지면의 경사와 방향의 한계를 극복한 뛰어난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누정의 건축 기법을 주택의 건축 공간에 적용한 것으로, 입향조인 화곡이 1450년경 지은 심소정과 유사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외부를 접한 마루의 3면에는 동마루를 달아 계자각(鷄子閣) 난간(欄干)을 두른 화려한 구성이며, 홑처마이지만 추녀를 길게 빼어 낙수(落水)로부터 난간을 보호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높고 날렵한 외관이다. 대청의 천장은 3량(三樑)의 보에 판대공(板臺工)을 세우고 종도리에 짧은 왕지도리를 짠 후 추녀를 올린 구조인데, 추녀 양 옆으로 선자연(扇子椽)을 정교하게 대어 단부의 한 칸 천장을 모두 선자연으로 구성한 화려한 목구조이다. 온돌방의 남쪽 단부(端部)에는 맞배지붕 도리 뺄목의 끝에 활주(活柱)를 세워 툇마루로 구성한 독특한 공간이 있다. 이는 한옥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구성으로 조선 전기에 이러한 공간적 변형을 구성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인데, 이러한 공간 구성은 안채의 남쪽 단부와 서쪽 단부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어 이 주택에서는 세 군데에서 나타난다. 지붕의 구성은 남쪽면이 맞배이며, 서쪽면은 팔작으로 뒷면의 모서리 부분은 우진각(隅進閣)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처마선이 같은 높이에서 수평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우산각집’이라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은 높은 사랑 마당의 동쪽으로 높은 석축을 쌓고 안채 마당을 조성한 남쪽에 위치한다. 중문의 양 옆으로는 고방과 디딜방아칸을 두었다. 중문의 정면에 2칸의 고방채를 북향으로 두어 안채 영역의 작업 공간을 모아 두었다. 안채는 넓은 안마당을 두고 사랑방의 후면을 향하여 나란히 앉아 있는데 역시 ㄱ자형의 평면으로 구성으로 지붕은 모두 맞배로 구성하였다. 서향한 안채의 정침(正寢)은 안방, 2칸 마루, 건넌방으로 구성하였고,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남향한 익랑(翼廊)은 2칸 안방, 2칸 부엌, 1칸 아랫방으로 구성하였다. 아랫방은 며느리가 사용하는 방으로 남쪽 단부에 툇마루를 붙이고, 사랑채 쪽 퇴(退)의 측면에는 심벽(心壁)을 조성하여 막았다. 내외벽(內外壁)을 조성하여 외부의 사랑채 쪽 시선을 차단한 고급진 구성이다. 부엌 위에는 안방에서 반턱 사다리로 올라가는 다락이 있는데 부엌 위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며, 아래칸 부엌 위의 공간은 바닥을 조금 높게 하였고, 공간의 일부를 아랫방의 벽장으로 사용하도록 분할하여,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도록 복합적으로 구성하였다. 2칸으로 이루어진 안방의 중간 기둥은 정침의 도리와 익랑의 도리가 직각으로 만나는 곳인데, 각 도리의 높이가 다르다. 이는 지붕의 높이 차이로 이어져 익랑의 용마루와 정침의 도리가 같은 높이에서 만나는 ‘서산각집’의 구조가 된다. 이러한 구조 형식은 경상우도(慶尙右道)의 안동 및 경주 지방의 구자형(口字型) ‘뜰집’에서 많이 보이는 구조로 경상좌도(慶尙左道)인 거창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이다. 다양한 지방에서 현감을 지낸 입향조 화곡 혹은 그 후손이 경상우도의 목수를 불러 적절한 규모의 건축 형식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중앙에서 벼슬을 한 사대부(士大夫)의 반가(班家)는 건축의 유형적 · 구조적 지역성을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안동에서 목수를 불러 건축한 ‘구례 운조루 고택(求禮 雲鳥樓古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가의 고방 남쪽 담 너머 가묘가 있다. 이는 낮은 담장을 삼면으로 두르고, 전면 3칸, 측면 1.5칸의 전면에 툇간을 둔 사당이다. 각 칸의 전면에 궁판(穹板)을 둔, 2짝의 여닫이문을 달았다. 기단은 높이 쌓았는데, 이를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전면의 공간을 앞으로 넓혔다. 이로 인해 처마선보다 더 나온 기단 위로 빗물이 떨어져 툇기둥을 상하게 하고 있다. 이 툇기둥은 방주(方柱)로 머리에는 보아지로 굵은 원형의 보를 받혔다. 그 보 위로 도리를 올려 덧도리 구조로 구성하였다. 가구(架構)는 3량이고 서까래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으로 구성하였다. 사당 옆의 장판각에는 ‘윤주하(尹胄夏) 교우문집(膠宇文集) 목판’(시도 유형 문화재, 1987년 지정) 427매와 문집 10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영호문집(瑩湖文集)』에는 「모계수기략(茅谿手記略)」, 「산서잡록초(山西雜錄抄)」, 「김문충공개록장(金文忠公開錄狀)」 등이 실려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파평윤씨 대언공파세보』(회상사, 1993)
- 거창군, 『거창군사』(거창군, 1997)
논문
- 김화봉, 『조선시대 안동문화권의 뜰집에 관한 연구』(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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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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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선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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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두꺼운 널빤지로 만든 대공.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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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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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모서리 기둥 위에 얹는 도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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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난간두겁대를 받치는, 짧고 가느스름한 기둥. 위는 구부정하게 내밀고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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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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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부재 머리가 다른 부재의 구멍이나 홈을 뚫고 내민 부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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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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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양반의 집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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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툇간에 딸린 기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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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네모진 기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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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部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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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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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한 고장에 대대로 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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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학문을 닦고 연구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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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둘 이상의 손자 가운데 맏이인 손자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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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2
: 족보로 보아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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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3
: 대문이 있는 집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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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4
: 중문이 있는 집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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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5
: ‘광(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의 원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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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9
: 기둥의 높이를 행랑채의 높이와 같게 한 대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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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1
: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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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2
: 마룻귀틀에 마루청을 직각으로 짧게 잘라서 깔아 놓은 마루. 좁고 긴 마루에 널을 가로로 짧게 잘라 댄 마루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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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3
: 부연을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으로 된 처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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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4
: 네모지고 끝이 번쩍 들린,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또는 그 부분의 처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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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5
: 무엇을 받치거나 버티는 데에 쓰는 굽은 기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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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6
: 가운데뜰로 들어가는 대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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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7
: 돌로 쌓아 만드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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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9
: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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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0
: 대문의 좌우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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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1
: 흙으로 둑을 쌓을 때에, 물이 밖으로 새지 못하도록 둑의 가운데에 진흙 같은 재료로 속을 다져 넣은 벽.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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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2
: 본채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너비의 칸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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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3
: 내벽과 외벽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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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4
: 두 부재를 십자(十字)로 맞추거나 길이로 이을 때, 각각 두께의 절반씩 따 내어 결합하도록 가공한 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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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5
: 조선시대의 경상좌도慶尙左道였던 경상북도 안동권과 경주권 및 영동권에 분포하는 폐쇄적 안마당을 가진 ㅁ자형 기와집.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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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6
: 도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도리 밑에 덧대는 도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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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7
: 마룻대에서 도리 또는 보에 걸쳐 지른 나무. 그 위에 산자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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