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광(崔允匡)은 1196년(명종 26)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과 그 일당들을 제거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었다. 당시 수창궁(壽昌宮)에 있던 왕이 최충헌과 최충수 형제를 궁궐 안으로 들어오게 하자, 최충헌은 궁궐 안에 이의민 잔당들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낭장(郞將) 최윤광을 시켜 자신의 말을 대신해서 왕에게 전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최윤광은 최충헌의 측근 세력으로 보이고, 이후 정2품의 좌복야(左僕射)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위상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崔瑀) 때에도 이어졌다. 예컨대, 최우의 총애를 받던 대장군(大將軍) 노인수(盧仁綏)와의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다. 노인수는 일찍이 1216년(고종 3)에 삭주(朔州)의 분도장군(分道將軍)에 임명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거란유종(契丹遺種)이 침략하였을 때 절에 있으면서 이에 대한 대처를 게을리했을 뿐만 아니라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이에 최충헌이 그의 관직을 박탈하였다. 또한, 노인수에게는 노모가 있었는데, 이를 저버리고 승복을 입고서는 변산(邊山)의 절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몇 년 뒤 최씨 정권의 2대 집정자 최우가 노인수를 대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총애하였다. 이를 눈여겨봤던 좌복야 최윤광은 그를 거란유종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자 성을 버리고 도망한 불충과 노모를 버리고 불교를 즐긴 것을 불효라고 하여 비난하였다. 이후 노인수는 최우를 살해하려 꾀하다가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