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실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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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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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진주전에 참가한 충렬제사에 관한 사료를 집대성하여 1831년에 간행한 사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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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임진왜란 당시 진주전에 참가한 충렬제사에 관한 사료를 집대성하여 1831년에 간행한 사적기.
내용

2권 2책. 목판본. 지방 사림과 충렬의 후손들이 임진란의 진주성 사적이 산만(散漫)·탈락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적을 모아 간행할 것을 합의해 정덕선(鄭德善)이 찬(撰)하고 윤태권(尹台權)이 서(書)하여 1831년(순조 31)에 간행하였다.

3년 후인 1834년 유학(幼學) 이건식(李建植)·정복의(鄭福疑)가 제복질(祭服秩)·제기질(祭器秩)·영건질(營建秩)·제문(祭文)을 추보(追補)하였다. 책머리에 목차와 팔역지(八域誌)·진주임계사적서(晋州壬癸事蹟序)가 있고, 다음에 추보했던 제복질·제기질·명건질·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1에 기(記)로 수성기(守城記)·함성기(陷城記)가 있고, 소(疏)로 청증직소(請贈職疏), 계(啓)로 청액계(請額啓)·청춘추향례계(請春秋享禮啓)·득인계(得印啓)·청증직정위차설재실계(請贈職定位次設齋室啓), 명(銘)으로 의암사적비명(義巖事蹟碑銘)이 있다.

권2에 장(狀)으로 양사우수개선보비변사장(兩祠宇修改先報備邊司狀), 비문(碑文)으로 어제득인명(御製得印銘)·인명비문(印銘碑文)·정충단비명(旌忠壇碑銘)·전성극적비명(全城郤敵碑銘)·정충단사우중수비명(旌忠壇祠宇重修碑銘)이 있다.

이 밖에 시·제문·충민창렬양사동서사열위도(忠愍彰烈兩祠東西祠列位圖)·예조완문(禮曹完文)·충민창렬양사조향절목(忠愍彰烈兩祠助享節目)·사적간록기(事蹟刊錄記)가 수록되어 있다.

임진·계사년의 진주전에 관한 사적으로서 가장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것이 <수성기>·<함성기> 및 계문이다. 이 중 <수성기>는 1차 진주전에 관한 내용으로 <전성극적비명>과 ≪용사일록 龍蛇日錄≫ 중흥지(中興志) <정사천가승 鄭泗川家乘>에서 해당 사료를 발췌, 전재하였다.

<함성기>는 2차 진주전에 관한 내용으로 <정충단비명>과 병사 최한진(崔漢鎭)의 상소, ≪징비록 懲毖錄≫에서 역시 관계 기사를 발췌, 전재하였다. 각 충신열사 개인의 사적은 <수성기>·<함성기>에서 살필 수 있지만, 최한진의 계와 <청증직정위차설재실계> 등의 계문과 각 기관의 관문(關文)·제문 등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은 왜란시의 1·2차 진주전 후에 관한 사료를 집대성하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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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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