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임금이 중죄인을 친히 국문(鞫問)하는 제도.
내용
친국의 구성은 대략 다음과 같다. 친국 장소는 원칙적으로 금상문(金商門) · 숙장문(肅章門) · 내사복(內司僕) 등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원칙에 불과하였다. 실제로 광해군은 주로 서청(西廳)에서, 숙종은 사정전(思政殿)에서 벌였고, 영조는 인정문(仁政門)에서 많이 개좌하고, 정조는 금위영에서 친국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국에 참여한 관리로는 시 · 원임대신(時原任大臣), 의금부당상, 양사의 대간(臺諫), 좌 · 우포도대장 등이었다. 그리고 위관(委官) · 문사낭청(問事郎廳) 등을 보면, 위관은 1인으로 수명대신(受命大臣)이 되며 추국을 지휘, 감독하고 문사낭청은 8인으로 문랑(問郎)이라고도 했는데, 이들은 추문(推問) 문답의 기록 등 잡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형방승지 · 의금부당상은 추국휴정시 추안(推案 : 죄인을 심문한 조서)의 작성과 정서를, 도사(都事) 10인은 별장과 군사 다수와 함께 죄인의 압래 · 압송 및 교통 정리와 경비를 담당하였다. 또한 일부 별장은 신장(訊杖) 또는 추국장으로서 고문을 맡았는데 주로 압슬고문(壓膝拷問) · 주장당문(朱杖撞問) 등을 하였다.
추국 절차를 보면, 우선 도사의 지휘 하에 죄인을 구인해 의금부 내 구치소인 남간(南間)에 수감한 뒤, 죄인의 상궐단자(上闕單子 : 죄인의 성명과 범죄 개요를 적은 기록부)를 왕에게 입계하고 낙점을 받는다.
그렇게 한 다음, 전시 추국 구성원은 각각 동벽(東壁) · 서벽의 지정 장소에 참석하고 도사가 죄인을 친국 장소에 구인해 성명 · 연령 등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문랑이 문목(問目)을 낭독해 문초하면서 납공(納供)한 뒤 공초가 끝나면 죄인을 내보내고 친국을 정파하였다.
이어 위관 · 의금부당상 · 형방승지 등과 문랑이 남아서 죄인의 진술 내용을 정서해 추안을 작성한 뒤 추안궤(推案櫃)에 넣고 봉쇄한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음과 동시에 몇 차례의 추국을 거쳐 죄인의 자백을 받았다. 추국진행 과정에서 죄인이 ‘지만(遲晩)’이라고 하면 유죄를 자백한 것이다.
이 때 죄인이 기력이 남아 있으면 결안을 작성하게 하고 기력이 없으면 문랑이 작성해 서명만 받는다. 왕이 추안과 결안을 보고 조율해 형량을 명하면 이로써 친국이 끝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
- 『경국대전』
- 『속대전』
- 『은대조례(銀臺條例)』
- 『은대편고(銀臺便攷)』
- 『육전조례(六典條例)』
- 『조선왕조 형사제도의 연구』(서일교, 한국법령편찬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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