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지미질금의 활동을 알려 주는 기록은 거의 없다. 구형왕이 신라의 대대적 공격을 마주하고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신라에 항복하면서 탈지미질금에게 명하여 본국에 머물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9년(532) 조에는 금관국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 세 아들과 더불어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으며, 이들을 예로써 대우하고 상등(上等)의 관등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탈지미질금이 금관가야의 옛 왕도인 구형왕의 식읍에 거주하면서 일정 기간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가락국기'에 보이는 탈지미질금 관련 기사를 대가야 멸망과 관련 지우는 견해가 있다. 즉, 탈지미질금과 도설지(道設智) 그리고 월광태자(月光太子)를 같은 인물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