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 심약(沈約)의 「팔영시(八詠詩)」를 효시로 삼는다. 송나라 때에 송적(宋迪)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와서 완성된 형태로 널리 회자되었다.
평사낙안(平沙落雁)○원포귀범(遠浦歸帆)○산시청람(山市靑嵐)○강천모설(江天暮雪)○동정추월(洞庭秋月)○소상야우(瀟湘夜雨)○연사만종(烟寺晩鍾)○어촌석조(漁村夕照) 등으로 대표되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은 후대에 수많은 화가와 시인에 의해 반복 창작되었다.
이른바 팔경시 형태의 확산과 성행을 가져왔다. 이후에 실경산수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관념산수의 전형으로 팔경(八景)관념이 정착되었다. 팔경시는 한국·중국·일본 3국에서 모두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의 이인로(李仁老)○진화(陳澕)○이제현(李齊賢) 등에 이어 조선조 강희맹(姜希孟) 부자○신숙주(申叔舟)○이행(李荇) 등을 거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창작 양상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각처의 승경(勝景)을 팔경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팔경시는 무려 4천여 수가 넘는 제가의 관련 작품이 각종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대개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공간적으로는 한국적으로 변용하여 16세기 이후 사림파(士林派)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문학양식으로 수용되는 등 개성적 양상을 나타내기에 이른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제영(題詠)조에는 팔경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팔경시 창작의 성행은 8연으로 구성되는 「한림별곡」의 형식에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 「독락팔곡(獨樂八曲)」과 같은 가사문학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팔경시의 내용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경우 외에도 역사나 윤리, 기타 문물 등을 심미적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그 주제와 태도에 있어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