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경시(八景詩)는 위진남북조시대 인물인 심약(沈約, 441~513)의 팔영시(八詠詩)에서 시작되었다. 심약은 494년에 태수로 있던 절강성 현창루(玄暢樓)에서 팔영시를 지었는데, 이후 주1의 「건주팔경시(虔州八景詩)」와 송적(宋迪)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 문예 공간에서 주2’은 문예의 중요한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특히 송적의 「소상팔경도」는 한국에서 고려 시대에 수용되면서 조선 후기까지 「소상팔경도」를 모의한 그림과 각 화제(畵題)를 제재로 창작한 시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소상팔경도」는 ‘평사낙안(平沙落雁)’ · ‘원포귀범(遠浦歸帆)’ · ‘산시청람(山市靑嵐)’ · ‘강천모설(江天暮雪)’ · ‘동정추월(洞庭秋月)’ · ‘소상야우(瀟湘夜雨)’ · ‘연사만종(烟寺晩鍾)’ · ‘어촌석조(漁村夕照)’라는 여덟 가지 화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팔경시는 고려 말 사대부 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고려 중기에 이인로(李仁老, 11521220)와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등이 소상팔경시를 창작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안보(安輔, 12821348)와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등이 우리나라 자연 경관을 제재로 한 팔경시를 창작하면서 이들 작품이 이후 우리나라의 승경을 팔경화한 팔경시 창작의 전범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왕실의 인물, 집현전 학사, 문인, 승려 등 다양한 작가들이 소상팔경을 제재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다. 특히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은 중국 송나라 영종(寧宗)의 소상팔경시를 토대로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조선 전기 문인들이 소상팔경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이승소(李承召, 14221484) · 강희맹(姜希孟, 14241483) · 어세렴(魚世謙, 14301500)은 이제현의 소상팔경사(瀟湘八景詞)에 차운한 사(詞)를 지었으며, 이외 신광한(申光漢, 14841555)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 정희량(鄭希亮, ?~1728) 등 많은 인물들이 소상팔경시를 창작하였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팔경시가 유행함에 따라 한양 도성의 팔경을 소재로 지은 경도팔경시(京都八景詩)를 비롯해 개인의 수양 공간인 은거지를 소재로 지은 팔경시가 창작되었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신도팔경(新都八景)」이라는 병풍 그림을 소재로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를 지어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하였다. 권근(權近, 13521409)과 권우(權遇, 1363~1419)는 정도전의 팔경시를 계승하여 「신도팔경(新都八景)」을 지어 다채로운 한양 도성의 면모를 담아 냈다. 이후 한양 도성의 팔경을 소재로 한 시는 조선 중기 월과(月課)의 시제(詩題)로도 출제되면서 조선 초기부터 창작된 경도팔경시의 전통과 그 성격을 계승한 작품이 창작되었으며, 조선 후기 한양의 전경(全景)을 형상화한 정조대(正祖代)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