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평정건은 조선시대 녹사(錄事)와 서리(書吏)의 관모이다. 녹사는 관모 뒤쪽에 좌우로 뿔을 꽂은 ‘유각평정건(有角平頂巾)’을 썼으며 서리는 뿔이 없는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을 썼다. 서리의 무각평정건은 ‘승두(蠅頭)’, 또는 ‘파리머리’라고도 하였다. 평정건의 모체는 앞이 높고 뒤가 낮은 형태이다. 윗면을 모가 난 평평한 형태로 덮었는데 뒤로 돌출된 부분이 있다. 영조대에 녹사가 사모를 쓰게 됨에 따라 서리만 평정건을 쓰게 되었으며 후기의 평정건은 자료마다 형태가 달라 정확한 형태를 밝히기는 어렵다.
정의
조선시대, 녹사와 서리의 관모.
연원
형태와 변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의 1599년(선조 32) 《기로연시화첩(耆老宴詩話帖)》에 보이는 서리와 녹사의 모습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평정건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확인되는 측면 모습을 통해 평정건의 기본적인 모체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머리둘레에 해당하는 무(武) 부분과 앞이 높고 뒤가 낮은 전앙후면(前仰後俛) 형태를 이루는 중간 부분, 그리고 정부(頂部)를 덮은 덮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뒤로 돌출한 부분이 보인다. 특히 쐐기형의 중간 부분은 평정건의 특징인 앞이 높고 뒤가 낮은 형태를 만들어준다. 18세기 전기에 녹사의 유각평정건은 오사모, 즉 사모로 대체되었는데 그 시기는 1731년(영조 7)에서 1744년(영조 20) 사이이다. 1746년(영조 22) 『속대전(續大典)』에 “녹사는 오사모에 홍단령을 착용한다.”라고 하였다. 1757년(영조 33)에 영조는 “옛날에는 모대(帽帶)를 착용한 녹사가 있고 유각평정건과 도대(絛帶)를 착용한 녹사가 있었는데, 근년 이래로 모대를 착용한 녹사는 있어도 평정건을 쓴 자는 없으니, 의정부와 중추부(中樞府)로 하여금 고제(古制)를 회복하도록 하라.”라고 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사는 여전히 오사모를 사용한 것을 볼 때, 고제를 회복하라고 한 영조의 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정조대의 『대전통편(大典通編)』에는 영조대 이후 변화된 복제가 기록되어 있다. 녹사는 오사모와 홍단령 제도가 변하여 홍단령이 폐지되고 대소 조의(朝儀)에 청현색 단령을 착용한다고 하였고, 서리는 무각평정건만 기록되어 있어 홍단령을 그대로 착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녹사가 사모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후 서리의 ‘무각평정건’을 간략하게 ‘평정건’으로도 지칭하였다.
서리는 상복으로 평정건에 홍단령을 착용하고 공복으로는 평정건에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축진찬도(己丑進饌圖)》(덕수, 1665)에서 흑단령 · 화자에 평정건을 착용한 진지서리의 공복 차림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784년(정조 8) 《문효세자 보양청계병(文孝世子輔養廳契屛)》 제6폭에는 평정건에 난모를 착용하고 있는 서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평정건에는 조선 전기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뒤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 1837년(헌종 3) 헌종과 효현왕후의 가례 반차도 중 여러 관아의 서리들이 등장하는데 청직령에 동일한 평정건을 쓰고 있다. 뒷모습에서 뒤로 늘어지는 부분이 확인된다. 그러나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대한제국동가도(大韓帝國動駕圖)」에는 평정건을 쓰고 있는 이조(吏曹) 서리(그림 8)의 모습이 보이는데 뒷자락은 보이지 않고 정수리 앞 모정이 둥근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형태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사(高麗史)』
-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속대전(續大典)』
- 『영조실록(英祖實錄)』
- 『헌종효현왕후가례도감의궤 하(憲宗孝顯王后嘉禮都監儀軌 下)』
단행본
- 이훈종, 『국학도감』(일조각, 1970)
- 『韓國傳統繪畵』(서울대학교 박물관, 1993)
- 尹愭, 『朝鮮朝 成均館의 校園과 太學生의 生活像』(李敏弘 譯註,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9)
- 『조선시대 궁중행사도』 Ⅰ(국립중앙박물관, 2010)
- 박두세, 『요로원이야기』(한석수 역주, 박문사, 2010)
-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Ⅱ(국립중앙박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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