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발문이나 간기(刊記)가 없어 그 간행 경위나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부록에 유규(柳0x9958)가 쓴 행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9세기 초로 추측될 뿐이다.
4권 2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앞에 학호선생세계도(鶴湖先生世系圖)와 학호선생연보(鶴湖先生年譜)가 있고, 권1에 시 53수, 부(賦) 2편, 권2에 소(疏) 7편, 계(啓) 9편, 전(箋) 2편, 권3에 서(書) 31편, 기(記) 1편, 제문 8편, 축문 1편, 가훈·절목·행장 각 1편, 전책(殿策) 2편, 권4에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행략(行略)·묘표음기(墓表陰記), 제문 5편, 만사 23편, 증시(贈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여강서원차김자준운(廬江書院次金子埈韻)」·「청음김공상헌여자광찬내방유시위증근차기운이수(淸陰金公尙憲與子光燦來訪留詩爲贈謹次其韻二首)」·「차삼제효언운(次三弟孝彦韻)」등의 차운시에는 특별히 원운(原韻)을 실었다. 이로써 김령(金坽)·김상헌(金尙憲)과는 친분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칠월기망범주강성벽하(七月旣望泛舟江城壁下)」는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를 연상해 지은 시로, 이는 강성(江城: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의 옛 이름이 적벽이었기 때문이다.
소 6편 가운데 5편은 이황(李滉)의 문묘 배향을 모함한 정인홍(鄭仁弘)과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한 상소며, 나머지는 익산군수로 있을 때 군민을 위해 올린 소다. 계는 모두 왜사접위관(倭使接慰官)으로서 부산에 근무할 때 올린 「왜정장계(倭情狀啓)」로, 여기에서 왜사는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보낸 진하정관(進賀正官) 미나모토(源智次)이다. 접견 절차와 예우 문제에 대한 트집을 비롯해 세견선(歲遣船)의 교역량을 늘려 달라는 왜인들의 요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우리나라와 대마도간의 외교 및 무역 문제를 연구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전책 2편은 기강의 쇄신을 주장한 내용의 글이다. 앞에 있는 「익산군민폐소」·「성균관연품(成均館筵稟)」·「상체찰사(上體察使)」·「상통제사(上統制使)」 등과 함께 저자의 정치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유성룡(柳成龍) 및 김성일(金誠一) 계열 학자들의 문학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