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부록에 수록된 유규의 행장을 바탕으로 후손 김상섭(金相燮)이 가장본(家藏本)을 저본으로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고 유규의 교정을 거친 후에 1813년에서 1822년 사이에 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두에 「학호선생세계도(鶴湖先生世系圖)」 · 「학호선생연보(鶴湖先生年譜)」가 수록되어 있다.
권1에는 시(詩) 53수, 부(賦) 2편, 권2에는 소(疏) 7편, 계(啓) 9편, 전(箋) 2편, 권3에는 서(書) 31편, 기(記) 1편, 제문(祭文) 8편, 축문(祝文) 1편, 가훈 · 절목 · 행장 각 1편, 전책(殿策) 2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4는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 · 행략(行略) · 묘표음기(墓表陰記), 제문 5편, 만사 23편, 증시(贈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배율시 등 각 체의 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주로 형제들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 이외에도 「여강서원차김자준운(廬江書院次金子埈韻)」 · 「청음김공상헌여자광찬내방유시위증근차기운이수(淸陰金公尙憲與子光燦來訪留詩爲贈謹次其韻二首)」 · 「차삼제효언운(次三弟孝彦韻)」 등 김령(金坽) · 김상헌(金尙憲) 등과 차운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소 6편 가운데 5편은 이황(李滉)의 문묘 배향을 모함한 정인홍(鄭仁弘)과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한 상소이며, 1편은 익산 군수를 재임하였을 때 백성들을 위해 올린 상소문이다.
계는 모두 저자가 왜사 접위관(倭使接慰官)으로 재임하였을 때 올린 「왜정장계(倭情狀啓)」이다. 일본 사신의 접견 절차와 예우 문제를 비롯해 세견선(歲遣船)의 교역량에 대한 일본의 요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우리나라와 대마도의 외교 및 무역 문제를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전책 2편은 기강(紀綱)의 쇄신을 주장한 내용의 글이다. 「익산군민폐소」 · 「성균관연품(成均館筵稟)」 · 「상체찰사(上體察使)」 · 「상통제사(上統制使)」 등과 함께 저자의 정치사상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며, 유성룡 · 김성일(金誠一) 계열 학자들의 문학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