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자전』은 1880년 파리외방선교회 한국 선교단에서 한국어를 불어로 풀이한 사전이다. 1권으로 된 B5판 양장본이다. 저자는 파리외방선교회 한국 선교사들이다. 이 사전은 병인교난(1866) 때 우리나라를 탈출한 리델주교가 신도 최지혁의 도움을 받아 만주에서 편찬한 원고를 일본으로 가져가서 출판한 책이다. 이 사전의 내용은 핵심부인 사전부와 부록의 성격을 띤 문법부, 지리부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전은 한국 철자를 표제어로 삼고 발음을 붙였으며 의미 설명에 있어서도 불어 이외 한자를 이용하였다. 서울 공통어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대역사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전1권 B5판 양장 ⅷ+615+ⅳ+57+21=706면, 일본 요꼬하마(yokohama)의 Echo du Japon 인쇄소에서 인쇄하고 C.Levy, Imprimeur-Libraire에서 발행하였다.
원명은 『한불ᄌᆞ뎐(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FRAN○AIS)』로서 한글이름, 한자이름, 불어이름이 위에서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등에는 불어 이름만 나와 있다.
저자는 파리외방선교회한국선교사들(Les Missionaires de Coree · de la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이다.
『한불자전』은 병인교난(1866) 때 우리나라를 탈출한 리델(Felix-Clair Ridel)주교가 서울 출신의 독실한 신도 최지혁(崔智爀)의 도움을 받아 만주 짜코우(岔溝)에서 편찬한 것인데 그 원고를 일본으로 가져가서 1880년 출판한 것이다.
이 사전은 『조선어문법(Grammaire coreenne)』(1881)과 함께 편찬되었다. 『한불ᄌᆞ뎐』의 ‘한’이란 말은, 서문에 의하면, ‘삼한(三韓)’의 ‘한’에서 따왔다고 한다.
내용은 Ⅰ. 사전부(Partie lexieographigue), Ⅱ. 문법부(Partie geographigue), Ⅲ.지리부(Partie geographique)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사전부가 이 책의 핵심부이고 나머지는 부록의 성격을 띤 것이다. 3부의 내용을 서문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단어설명방식
서문은 『한불자전』의 사용법을 해설하였다. 사전부는 먼저 우리말의 단어를 한글로 제시하고 그 발음을 로마자의 대문자로 적고 있으며 그것이 한자어일 때는 한자를 쓰고 마지막으로 불어로 그 뜻을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형리(刑吏)’란 단어를 예로 들어 보인다.
형리, HYENG-RI. 刑吏, Secretaire du mandarin, commi○…
처음부터 로마자 전사로 시작하지 않고 한글로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이집트문자나 한자 같은 표의문자들은 문자 자체의 구조적 복잡성 때문에 로마자 전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럽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지만 한글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문자는 24자모로 된 매우 단순한 알파벳문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문자는 헤브류, 그리스의 알파벳이나 아랍이나 러시아의 알파벳만큼 쉽게 습득할 수 있고 단시일 안에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이 알파벳문자의 특성을 지닌 단순성을 띠었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편찬자들은 자음과 모음의 글자 만드는 법을 독자들에게 일러 주고 있다.
(2) 한글배열방식
길죽한 모음 글자는 수직선 ‘ㅣ’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글자의 오른편에 짧은 수평선을 더 하면 ‘ㅏ’가 되고 또 하나를 덧붙이면 ‘○’가 된다. 아래아 ‘ · ’는 콤마를 뒤집어 높으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ㅣ’의 왼쪽에 짧은 수평선을 더하면 ‘ㅓ’가 되고 또 하나를 더하면 ‘○’가 된다. 옆으로 납작한 글자는 수평선 ‘○’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 글자의 위에 짧은 수직선을 그으면 ‘ㅗ’가 되고 두 개를 얹으면 ‘ㅛ’가 된다. 두 글자를 거꾸로 놓으면 ‘ㅜ, ○’가 된다.
이러하여 얻어진 11개의 모음글자를 불어의 알파벳의 모음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ㅏ, ○, · , ㅓ, ○, ○, ㅣ, ㅗ, ㅛ, ㅜ, ○
A, ○A, ○. E, YE, EU, I, O, yo, ou, you
자음글자도 모음글자와 같이 기하학적 방식으로 구성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ㄱ’과 같은 하나의 각우 k가 되고 이것을 뒤집어 놓으면 N을 나타내는 ‘ㄴ’이 형성된다. 이렇게하여 습득되는 자음은 14개가 되는데 그들을 다음과 같이 불어의 발음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ㅎ, ㄱ, ○, ㅁ, ㄴ, ㅇ, ㅂ, ○, ㄹ, ○, ㄷ, ○, ㅈ, ㅊ
H, K, Hk, M, N, NG, P, HP, R(L), S(T), T, HT, TJ, TCH
한글의 전통적 배열방식을 취하지 않고 불어의 발음순서를 따른 것은 독자가 불어 등의 알파벳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한 소치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사전편찬의 방식이 한글로 시작하여 로마자로 발음을 다른 방향을 취한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문자가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대방향, 말하자면 먼저 발음을 적고 한글을 제시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는 이유를 다른 문자의 습득사정과 비교해 가며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희랍어나 히브류어, 아랍어 등을 그 원문에 의거하여 습득하고 다음에 사전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사전은 각 언어의 고유문자로 단어가 주어지면서 시작되는데 한국어 공부를 위해 따라야 하는 길도 이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을 위해 만들어진 일어사전은 반대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본어 원전을 공부하는 서양인의 숫자가 적고 일본인 자신도 가나를 한자의 발음을 표시하거나 단어나 구의 의미를 보충하는 데 쓸 뿐 아니라 초서체 같은 것은 형태가 독특하여 외국인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 비록 한자가 존중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 쓰이는 한국문자는 초서체에서조차도 단순성을 보존하고 있어서 서양문헌의 원전과 같은 정도로 누구든지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단어배치방법
단어의 배치는 두 가지 방법에 따르고 있다. 음절에 따른 순서(ordre syllabigue)와 알파벳 순서(ordre alphabetigue)가 그것이다. 앞의 방식은 주로 한자기원의 단음절 단어에 적용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뒤 형리의 방식에 따랐다. 뒤의 방식은 서양사전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이용에 편리하다고 한다.
한국문자의 ‘ㅇ’은 2가지 용법을 가지고 있다. 한음절의 끝에 올 때는 NG의 발음을 가지지만, 음절의 처음에 올때는 알파벳 순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무음기호로서 후행하는 모음의 장식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두에서는 ‘ㄹ’과 ‘ㄴ’은 구별하기가 힘들지만 이런 단어들은 모두 ‘ㄴ’계열에 넣어 처리했다. ‘ㄹ’이 음절초두에서는 R로, 음절말에서는 L로 실현되지마는 어중에서는 R로 나므로 이 순서를 따른다.
그러나 ‘○’의 경우는 다르다. 음절말에서는 ‘ㄷ’ 곧 T로 나기 때문에 ‘ㄷ’의 순서를 따른다. ‘○’이 ‘ㄱ, ㄷ, ㅂ’과 결합된 이른바 합용병서된 단어들은 ‘ㄱ, ㄷ, ㅂ’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다. ‘ㅣ’ 앞에서는 ‘니마→이마’와 같이 ‘ㄴ’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때 ‘ㄴ’이 떨어진 형태 곧 ‘이마’와 같은 단어를 찾아보게 하였다. ‘댜, 뎌’ 등이 ‘쟈, 져’내지 ‘자, 저’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ㄷ’행을 찾으면 된다. ‘○’를 가진 말이 때로는 ‘ㅜ’, 때로는 ‘ · ’로 발음되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브ᄅᆞ다∼부ᄅᆞ다 ; 업슨∼업ᄉᆞᆫ).
한국어의 음절은 둘로부터 다섯에 이르는 글자가 모여서 형성된다. 이때는 무음의 기호 ‘ㅇ’도 글자의 구실을 한다. 글자모임의 방식은 모음의 글자모양에 따라 다르다. 수직적 모임들은 자음의 오른편에, 수평적 모음들은 자음 아래 각각 놓인다.〔이, 러, 가 ; 고, 교, 부〕, 두 세 개의 모음이 합하여 이중모음을 만들 때는 두 번째 모음은 첫 번째 모음의 오른쪽에, 세 번째 모음은 그 오른쪽에 쓴다.〔와, 괴, 웨〕, 이렇게 형성된 음절들은 단어를 구성하기 위해 줄표〔-〕로써 연속적으로 배열된다.
(4) 사전등록어휘
이 사전에 등록된 어휘는 순수한 한국어와 한국어한 중국어다. 후자는 중국식 발음을 닮은 한국식 발음으로 된 것인데 *표로 표시되어 있다. 발음에 이어 음성과 의미의 두 가지 관점에서 그에 대응되는 한자가 나타난다. *표가 붙어 있지 않은, 순수한 한국어의 발음 다음에 나타나는 한자는 그 단어의 뜻을 보이는 것이지 발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한자어에 어미〔접사〕가 불어 형성되는 단어는 한자어에 대해서만 한자를 붙인다.
〔이샹ᄒᆞ다…이샹이 너기다…異狀〕, 동사 ‘ᄒᆞ다’는 명사에 불어 동사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 때는 명사만 번역을 하고 동사는 명사의 의미에 이루어서 이해하게 하였다. 이를테면 ‘ 신’과 ‘ᄒᆞ다’의 합성어인 ‘ ᄒᆡᆼ신하다’는 명사 ‘ᄒᆡᆼ신’의 경우만 뜻풀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5) 기타
로마자 발음 위에 선〔-〕을 그은 것은 긴소리의 부호이다. 자음으로 끝나는 모든 명사는 주격형태가 붙은 어형이 제시되어 있다. 이것만 주어지면 문법규칙에 따라 변화를 시킬 수 있다. ‘밥 pop, ris’은 ‘I’를 덧붙이는데 이는 이 단어가 ‘밥이 pap-I’를 주격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사의 경우는 부정법〔기본형〕이외 과거분사〔제1부사형〕와 과거관계분사〔과거관형사형〕를 제시해 놓았는데 이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그것을 서법과 시제에 따라 쉽게 활용시킬 수 있다. 〔ᄆᆞᆫ지다 MAN-JI-TA, TJYE, TJIN〕 알파벳 순서의 어미가 나타난 것이다.
이 사전에는 용법에 의하거나 지방적 차이에 의하거나 철자법이 다를 때는 그것을 밝혀 놓았다. 또 이 사전에는 중국의 고사숙어와 한국속담도 들어 있다. 동물계(界) · 식물계(계). 광물계에 유래하는 단어들은 일반적인 번역을 하거나 기술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부록의 성격을 띤 문법부는 ‘ᄒᆞ다’와 명사 뒤에 쓰이는 ‘이다’〔지정사〕의 활용표를 제시한 것인데 의미설명과 함께 알파벳 순서의 어미가 나타난 것이다.
두 번째 부록은 우리나라의 지방〔도〕, 도시, 강산의 이름을 알파벳순서로 배열하되 지리적 위치〔경도, 위도〕와 민사행정, 사법행정, 군사행정, 해상행정의 기능이 표시되어 있다.
이 사전의 끝에는 위의 지지를 뒷받침하는 1/2,380,000지도 한장이 붙어 있다. 지도 앞에는 17개의 어휘를 보충하여 사서부에서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불자전』은 푸찔로의 『노한사전』(1874)에 이어 나온 두번째 한국어 · 유럽어 대역사전이다. 푸찔로의 것은 사전이라기보다 대역어휘집에 가까우며 대부분 함경방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본서는 한국철자를 표제어로 삼고 발음을 붙였으며 의미설명에 있어서도 불어이외 한자를 이용하는 등 사전으로서의 격식을 다 갖추고 있다. 더욱이 이 사전은 서울공통어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본격적 대역사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전은 이후의 서양인의 대역사전의 전범이 되었으며 서양인의 국어연구의 필수서적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이 사전은 19세기의 국어의 어휘뿐 아니라 문자, 음운, 문법을 구명하는 자료로서도 이용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수년전 광문사에서 복사판을 낸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