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군필(君弼)이다. 한선국의 아들인 한시각(韓時覺)과 한시진(韓時振), 4촌 형제인 한제국(韓悌國), 한신국(韓信國) 등도 화원이었다.
인조 대에서 현종 대에 걸쳐 도화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한선국의 가장 이른 활동 기록은 1626년 6월 명나라 태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온 사신을 접대하는 나례청(儺禮廳)에 참여한 일이다. 1637년에는 주1를 잘하는 화원으로서 세조의 영정 개장 도감에서 활동하였다. 1647년 3월에는 인평대군(麟平大君)을 정사(正使)로 하는 사은겸진하사행(謝恩兼進賀使行)의 수행화원으로 베이징[北京]에 다녀왔다. 이후 다양한 도감에서 활약하였는데, 1651년에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가례도감(嘉禮都監)에 참여한 이후로는 활동이 확인되지 않는다.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651년에서 머지않은 시점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 소장 「허유세이도(許由洗耳圖)」는 한선국의 유일한 전칭 작품이다.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고사를 그린 산수인물화로, 17세기 도화서의 화풍을 주도한 이징(李澄)의 영향이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