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불교의 화엄의식의 내용과 절차를 수록한 의례서.
서지사항
현재 전해지는 『화엄예문(華嚴禮文)』을 필사 시기순으로 소장처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1767년(영조 43) 직지사(直指寺) 은선암(隱仙庵), 필사본 1책 절첩장(折帖裝) 12장 4절 48면, 표제는 화엄(華嚴). ②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1891년(고종 28) 약암(藥庵)의 한 승려가 책을 베낌. 필사본 1책[81장: 화엄예문 46장, 관세음보살예문(觀世音菩薩禮文) 14장, 대방광불화엄경일백십팔다라니문(大放廣佛華嚴經一百十八陁羅尼門) 19장,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2장]. ③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1893년(고종 30) 예천 용문사(龍門寺) 응호(應浩) 필사, 필사본 1책[27장], 권말에 ‘소화(昭和) 12년(1937년) 청주군(淸州郡) 남이면(南二面) 안심사(安心寺)’라고 적혀 있음. ④ 고반재 소장: ‘임인(1902년) 5월 5일 마침, 당호 서담당(瑞潭堂) 대화상’, 말미에 ‘대한 광무 8년 계묘(1903년) 12월’이라고 되어 있음. 필사본 1책[28장]. ⑤ 원각사 소장: 권말에 ‘정묘년 3월 시종여일(始終如一) 마침. 승(僧) 경원(鏡元) 주지(主持)’라고 되어 있어 1907년 경원이 필사한 것으로 추정됨, 필사본 1책[25장]. ⑥ 통도사 극락암 소장: 1912년 2월 16일 김정석(金靖錫)이 취산[鷲山: 통도사] 법회에서 베낌. 필사본 1책[12장: 화엄대예문(華嚴大禮文) 10장, 소예문(小禮文) 2장].
구성과 내용
의의 및 평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예문』은 1767년부터 1912년까지 여러 곳에서 필사되어 전해지고 있다. 내용이 조금 다른 것도 있지만 『화엄경』의 취지를 담은 의례문으로서 '화엄예문'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화엄예문(華嚴禮文)』
단행본
- 『화엄대예문』(정우서적, 2008)
- 『한국불교의례자료총서』(삼성암, 1993)
논문
- 이성운, 「불교 의례의문(儀禮儀文)의 명칭에 대한 고찰」(『기호학연구』 47, 한국기호학회, 2016)
- 전해주, 「한국불교 의식문(儀式文)에 보이는 화엄신앙(華嚴信仰)의 사상」(『종교연구』 16, 한국종교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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