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대(金鼎大: 1802~1874)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계중(啓重), 호는 휴각재(休殼齋)이다. 민영훈(閔泳勳)의 문인으로, 일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경전 연구에 전념하였다.
3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886년(고종 23) 김낙현(金洛顯)의 산정(刪定)을 거쳐 손자 김두남(金斗南)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낙현의 서문이, 권말에 윤주현(尹胄鉉)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詩) 273수로, 오언절구(五言絶句) 32수, 칠언절구(七言絶句) 103수, 오언사율(五言四律) 18수, 칠언사율(七言四律) 100수, 잡시(雜詩) 20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서(書) 30편, 권3에는 서(序) 2편, 기(記) 9편, 전(傳) 3편, 설(說) 3편, 묘지(墓誌) 7편, 제문(祭文) 7편, 잡지(雜識) 9편이 실려 있다. 끝에는 윤주현(尹胄鉉)이 쓴 발문이 있다.
시 중에는 「등남산잠두유감(登南山蠶頭有感)」, 「용암도중(龍巖道中)」 등과 같이 여정 중에 지은 기행시가 많고, 「진시황(秦始皇)」, 「한고조(漢高祖)」 등과 같이 중국 고대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영사시도 있다.
서(書)는 윤필현(尹弼鉉), 이필환(李禮煥), 이배수(李培秀), 김용근(金龍根) 등에게 보낸 편지로, 주로 경의(經義)와 예설(禮說)에 관한 논의나 경제지책(經濟之策)에 관한 의견이 담겨 있다. 서(序)는 저자가 실전된 10여 세대의 외가(外家) 세첩(世帖)을 만들고 쓴 서문 등이다.
기는 객과의 문답을 통해 자기 자신인 휴각재에 대해 서술한 「휴각재기(休殼齋記)」, 1841년(헌종 7) 봄 무주의 풍산(豊山)에 갔을 때 만난 나그네와 주고받은 문답을 적은 「남정기(南征記)」, 수주팔봉(水周八峰)을 유람하며 쓴 「충주팔봉기(遊忠州八峰記)」 등이다.
전은 자신의 집안에 대해 쓴 「자서가전(自序家傳)」, 호랑이에게 끌려가던 어머니를 구한 효자 김논금(金論金)에 대한 「김논금전(金論金傳)」 등이다. 설(說)은 가문에 계보와 혈통에 대한 논하는 보계(譜系), 지관(地官)이 도인관(導引官)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도인관설(導引官說)」 등이다.
묘지는 증조부, 조부 등을 비롯하여 조카 김기원(金器圓) 등 집안사람들에 대한 것이며, 제문은 김용근(金龍根), 백동혁(白東爀)에 대한 것 등이다. 잡지로는 1843년 청주 화양동을 유람하고 쓴 「동행록(東行錄)」, 과거의 연원과 병폐에 대한 문답을 쓴 「과설문답(科說問答)」, 김시습(金時習)의 자취와 죽은 뒤의 봉사에 관해 변론한 「매월당부도변(梅月堂浮圖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