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문집 ()

사헌문집
사헌문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 문신 정내성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사헌집(思軒集)
문헌/고서
간행 시기
1860년
저자
정내성(鄭來成)
편자
정운규(鄭雲逵)
권책수
6권 3책
권수제
사헌문집(思軒文集)
판본
목판본
표제
사헌문집(思軒文集)
소장처
고려대학교 도서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사헌문집』는 조선 후기 문신 정내성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시문과 행장, 제문, 묘갈명, 서간문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을 6권 3책에 수록한 목판본이다. 그의 아들 정지락과 손자 정운규가 초고를 정리하고, 1860년 유형진의 발문과 함께 간행하였다. 본집에는 애도시와 사우들과의 교류 시, 시무소와 체직소 등 현실 정치 비판, 자성의 글과 유학자로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문헌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정내성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정내성(鄭來成: 1744~1835)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기서(岐瑞), 호는 사헌(思軒)으로 안동 출신이다. 1780년(정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와 종묘서령(宗廟署令) 등을 지냈고 병조참판,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서지사항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권수(卷首)에 총목록이 있고, 권미에 유형진(柳衡鎭)이 186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1860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동일한 내용의 필사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저자의 아들 정지락(鄭之洛)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이를 정리하였으며, 1853년 여름 천태산(天台山) 흥국사(興國寺)에서 유형진(柳衡鎭) 등과 함께 교감(校勘)하고 산정(刪定)하여, 초고의 약 삼분의 일 분량을 편차(編次)하였다. 이듬해인 1854년에는 유치명(柳致明)에게 행장(行狀)을 받는 등 간행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였으나, 정지락이 사망함으로써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 후 그의 아들 정운규(鄭雲逵)가 부친의 뜻을 이어, 이휘녕(李彙寧)에게 받은 묘갈명을 증보한 뒤 1860년 봄에 책을 판각하고, 같은 해 여름에는 유형진의 발문을 덧붙여 분질(頒帙)하였다.

구성과 내용

권1은 시(詩) 126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시체(詩體)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김희직(金熙稷), 권성익(權聖翊), 정일제(鄭逸濟), 박종주(李宗洙) 등을 애도하여 의례(儀禮)로 지은 만시가 55수로 비중이 높다. 효릉(孝陵), 조경묘(肇慶廟) 등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 천등산(天燈山) 개목사(開目寺), 명옥대(鳴玉臺), 이계서당(伊溪書堂), 학암서원(鶴巖書院) 풍월루(風月樓) 등에서 사우들과 모임을 갖고 지은 시 등과 1833년에 장남 정지락(鄭之洛)의 회갑을 맞아 지은 시까지 수록되어 있으며, 「제만운송공유적후(題晩雲宋公遺蹟後)」, 「병복중음정명옥대계회중(病伏中吟呈鳴玉臺禊會中)」, 「희정풍월루회중(戲呈風月樓會中)」에는 장문의 병서(並序)가 있다.

권2는 소(疏)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사간원정원소(辭司諫院正言疏)」는 1822년에 학문에 힘쓸 것, 기강을 진작시킬 것, 군정(軍政)을 엄중히 할 것, 염치(廉恥)를 권장할 것, 과시(科試)를 엄격히 할 것, 조적(糶糴)을 고르게 할 것 등 시무(時務) 6조를 아뢴 것이며, 「사병조참지서(辭兵曹參知書)」는 1827년에 현도(縣道)를 거쳐 상서한 것으로, 체직을 청하면서 5조에 걸쳐 기강의 문란, 탐오(貪汚)의 습속 등의 폐단을 진달하였다.

권3은 서(書) 24편, 뇌사(誄辭) 8편, 잠(箴) 3편, 상량문(上樑文)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는 정조가 1799년에 영남 명현들의 사적을 수집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을 때 자신의 선대 정사성(鄭士誠) 등의 사적이 누락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며, 김진동(金鎭東)에게 보낸 것을 비롯하여 권현도(權玄度) · 이우(李㙖) 등의 사우, 사림, 친익척에게 보낸 것이 인물별로 편찬되어 있다. 뇌사는 김상호(金相虎) · 이인건(李寅建) 등에 대한 것이며, 잠 가운데 「자신잠(自新箴)」은 20세 이후 연달아 과거에 실패한 후, 그로 인해 삶을 그르칠 수 있다 하고 거듭나는 의미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자 1769년 봄에 지은 것이다. 상량문은 서현재사(西峴齋舍) 승료(僧寮), 용산와덕재(龍山 臥德齋), 이건(移建)하는 유원재(悠遠齋)에 대한 것이다.

권4는 축문(祝文) 4편, 제문(祭文)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축문에는 구봉령(具鳳齡)의 분황고유문(焚黃告由文)과 안동 주계서원(周溪書院)에서 위판을 개제할 때의 고유문 등이 있으며, 제문은 이상정(李象靖), 유도원(柳道源), 김한동(金翰東) 등에 대한 것이다.

권5는 서(序) 2편, 지발(識跋) 11편, 잡저(雜著) 4편, 묘갈명(墓碣銘)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 가운데 「향음주례서(鄕飮酒禮序)」는 1817년 10월에 향교에서 향음주례를 시행한 전말을 기록하고 송축한 것이다. 지발에는 7대조 정사성(鄭士誠)의 『지헌집(芝軒集)』과 7대 종조 정사신(鄭士信)의 『매창집(梅窓集)』, 6대 종조 정칙(鄭侙)의 『우천집(愚川集)』을 간행하면서 붙인 것 등이다. 잡저 가운데 「경술사장변(經術詞章辨)」은 경전의 뜻은 궁구하지 않고 외우는 데만 힘쓰는 풍토를 경계하여 지은 것이며, 「심도기(沁都記)」는 장녕전 별검으로 있을 때 나라의 보장(保障)인 강화도의 성지(城池), 대사(臺榭), 풍토의 대략을 기술한 것이다. 묘갈명은 종선조 정억(鄭億), 6대조 정전(鄭佺)의 처 고창오씨(高敞吳氏)에 대한 것이다.

권6은 부록(附錄)이다. 이가순(李家淳), 김희수(金羲壽), 유상조(柳相祚) 등이 지은 만사(輓詞) 15편, 1840년의 사제문(賜祭文), 주계서원 · 학암서원 · 한천서당(寒泉書堂)의 유생, 유태좌(柳台佐) 등이 지은 제문 6편, 유치명(柳致明)이 1854년에 지은 행장, 이휘령(李彙寧)이 지은 묘갈명, 아들 정지락이 1840년에 지은 유사(遺事)가 실려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사헌문집(思軒文集)』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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