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文舞)를 담당하는 일무(佾舞)의 무원(舞員)이 음악에 맞추어 족도(足蹈)하며 입장하고 영신에서는 헌가(軒架), 전폐와 초헌에서는 등가(登歌)에서 음악을 아뢴다. 원래는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되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곡이 축소되었다. 세종 때의 노래말은 5언 12구의 한시였으나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영신과 전폐, 초헌 인입장에서 각각 5언 4구로 변하여 현재에 이른다. 곡명은 초헌 인입장의 「희문」 노래말 중 ‘희운(熙運)’과 ‘문치(文治)’에서 온 말이다.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영신>
조상님 덕이 우리 후손을 열어주시리
아아 그 모습과 베푸심을 생각하오면 빛이 나나이다
삼가 깨끗한 제사를 올리오니
우리를 편하게 하시옵고 소원 이루게 하소서
(世德啓我後 於昭想形聲 肅肅薦明禋 綏我賚思成).
<전폐>
변변치 않은 물건이오나 가히 정을 통하옵기 바라오며
광주리 받들어 이 폐백을 올리나이다
선조께옵서 이를 즐거이 받아들이시면
공경히 예를 드리는 이 마음 편안하겠나이다
(菲儀尙可交 承筐將是帛 先祖其頣歆 式禮心莫莫).
<초헌 인입장>
여러 성군께옵서 빛나는 국운을 여셨으니
찬란한 문화 정치가 창성하도다
언제나 우리는 성한 아름다움을 찬송하오며
이를 노래에 베풀어 부르나이다
(列聖開熙運 炳蔚文治昌 願言頌盛美 維以矢歌章).
원래는 임종궁평조(林鐘宮平調)로 창제되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로 바뀐 5음 음계의 곡이다. 노래말 매구마다 박(拍)이 한 번 들어가고, 박 둘이 합쳐져 한 장구형을 이룬 규칙적인 장단을 지녔으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불규칙적인 장단형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종지형은 하일(下一)에서 하오(下五)에 이르는 하행종지형이다.
현재 연주되는 「희문」은 영신에서는 「희문」 9성(九成)이라 하여 같은 곡을 아홉 번 반복 연주하고, 전폐에서는 의식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연주하는데, 영신에서보다 한배 느리게 연주한다. 『세종실록』 악보 · 『세조실록』 악보 · 『대악후보(大樂後譜)』 · 『속악원보(俗樂源譜)』 · 『시용무보(時用舞譜)』 등에 악보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