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재서(愼獨齋書)’로 명기된 교열기가 붙어 있으므로, 신독재 김집이 읽고 손수 교정을 가한 문헌으로 보고, 또 수록 작품 대부분이 전기소설(傳奇小說)이라는 점 때문에 ‘신독재수택본전기집(愼獨齋手澤本傳奇集)’이라고 한다. 교열기의 ‘신독재’가 김집이라면 이 책은 17세기에 필사된 것이므로, 현전하는 필사본 한문 소설집 중 이른 시기의 문헌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가 김집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필사본(筆寫本) 1책. 책 크기는 가로와 세로 모두 31㎝이고, 앞과 뒤에는 모두 표지가 없다. 92장(184면)부터는 낙장된 상태로 전한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 「유소랑전(劉少娘傳)」 · 「왕경룡전(王慶龍傳)」 · 「왕십붕기우기(王十朋奇遇記)」」 ·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 「최문헌전(崔文獻傳)」 등이 주1 있고, 「주생전(周生傳)」 · 「상사동전객기(相思洞餞客記)」 · 「옥당춘전(玉璫春傳)」 등이 부분적으로 실려 있다. 그 밖에 「과기탄(寡妓嘆)」 · 「고반승(古班僧)」 등 원정(原情) 형식의 소품문과 야담 등이 실려 있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5편의 소설 중 2편인데, 「만복사저포기」는 그 제목이 ‘만복사포표기(萬福寺蒲摽記)’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 「유소랑전」은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는 유일본이고, 「왕경룡전」은 중국 화본소설인 「옥당춘낙난봉부(玉堂春落難逢夫)」의 개작이다. 「왕십붕기우기」는 중국 희곡 「형차기(荊釵記)」를 개작한 소설인데, 한문본으로는 이 책의 것이 유일본이며 국문본으로 「왕시봉전」이 전한다. 「최문헌전」은 「최고운전(崔孤雲傳)」의 이본이다. 전재된 작품들의 문구를 꼼꼼하게 교정해 두고, 이에 대해 해명하는 교열기가 작품집 중간에 붙어 있어 특히 주목된다.
이 문헌을 처음 발굴하여 소개한 정병욱은 ‘신독재서(愼獨齋書)’라 명기한 문헌 속의 교열기에 근거해, 17세기 후반의 저명한 유학자 신독재 김집의 수택본이라 추정했다. 이러한 추정이 맞다면, 교열기 및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문헌은 병자호란 이후 1639년 사이에 신독재의 열독을 거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헌을 17세기 초중반 우리 소설 문학의 발달상을 보여 주는 희귀하고 주요한 소설 작품집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현 소장자인 정학성은 교열기의 필적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김집의 진적(眞迹)과 대비하면서 두 필적이 일치한다는 조종업의 감정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교열기의 신독재가 김집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는 없으므로, 이 책의 필사 시기는 19세기 이후까지 내려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