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미상의 한문소설.
저자
구성 및 형식
내용
평안도 영유(永柔) 사람 김영철은 1618년 19세의 나이에 명(明)의 파병 요청으로 후금(後金)과의 전쟁에 종군하였다가, 1619년 심하 전투에서 조명(朝明) 연합군이 패배하자 포로로 잡혔다. 이때 함께 사로잡힌 항왜(降倭)들의 탈출 계획이 누설되었으므로 김영철은 죽을 위기에 몰렸는데, 후금 장수 아라나(阿羅那)가 김영철의 모습이 전사한 아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노주(虜主)에게 노예로 삼기를 청하였다. 이에 김영철은 명나라 등주(登州) 사람 전유년(田有年) 등 5명과 함께 아라나에게 예속되었다. 이후 김영철은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양쪽 발뒤꿈치를 잘렸는데, 아라나는 그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제수(弟嫂)를 아내로 주었고, 김영철은 득북(得北)·득건(得建) 두 아들을 두었다. 1625년 5월에 아라나는 김영철에게 건주에서 말을 기르게 하면서 전유년 등을 감시하도록 했는데, 이때 김영철은 전유년 등과 탈출하여 영원(寧遠)으로 갔고, 이어 명나라 조정의 명에 따라 등주로 가서 전유년과 함께 살았다. 후금에서 탈출하기 전에 전유년은 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으므로, 김영철은 전유년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득달(得達)·득길(得吉) 두 아들을 낳았다. 1630년 10월에 조선의 사행선이 등주에 도착하였다. 김영철은 고향 사람인 뱃사공 이연생(李連生)으로부터 집안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듬해 봄에 귀국하는 사행선에 몰래 숨어 들어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영철은 이군수(李群秀)의 딸과 다시 결혼했다. 1636년에 이연생이 다시 사행선을 타고 중국에 갔다. 이때 김영철의 아내와 전유년이 찾아와 김영철의 소식을 묻자, 이연생은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해 겨울, 청(淸)이 가도(椵島)를 공격하기 위해 영유현에 주둔하였는데, 김영철은 영유현령과 함께 청나라 진영에 갔다가 아라나의 조카를 만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현령이 그에게 물건을 주어 무마하였다. 김영철은 1640년에 청나라가 개주를 칠 때 임경업(林慶業)의 휘하에 통역관으로 출전하였다가 전유년을 만나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또 1641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파병했을 때에는 유림(柳琳)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는데, 그때 아라나를 만나 곤경에 처했으나 유림이 세남초(細南草)를 속물(贖物)로 주었으므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김영철은 군중에 있던 아들 득북과도 만났으며, 청나라 임금으로부터 비단과 말을 받았다. 이후 김영철은 그간 진 빚을 갚느라 재산을 탕진하여 친척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1658년에 조정에서는 자모산성을 수축하고 수졸(守卒)을 모집하여 부역을 면제하였는데, 김영철은 의상(宜尙)·득상(得尙)·득발(得發)·기발(起發) 네 아들과 함께 자모산성으로 들어가 살다가 84세에 삶을 마쳤다.
특징
의의 및 평가
「김영철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김영철이 이국에서 처자(妻子)를 두었다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타국에서 눌러앉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안석경은 이를 문제시하기도 했다. 김영철은 명청 교체기의 온갖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었고, 오히려 전쟁터에서 진 빚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여 결국 자모산성의 수졸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김영철전」에서는 김영철이 후금과 명나라에서 풍요로운 삶을 산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후금에 포로로 잡혔던 당대 조선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김영철전」은 김영철이 과거사를 김응원에게 들려주었다는 형식으로 마무리되는바, 당시 조선의 피폐한 현실 속에 있었던 김영철의 삶이 이국을 풍요의 땅으로 회고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당대 조선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다름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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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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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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