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그림의 크기는 세로 388.5㎝, 가로 328.2㎝이다. 중수기(重修記)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청곡사 승려들의 시주와 불사 참여로 1734년 5월 26일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불화의 최초 제작 시기와 구체적인 중수 부분 등은 명확하지 않다. 중수 때 화사(畵師)는 명열(明悅)인데, 지리산과 인근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1729년의 산청 율곡사 괘불탱 중수에도 참여하였다. 2000년 1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좌상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십대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팔부중, 타방불 등을 함께 그린 불화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 「서품(序品)」에 근거하여 석가모니가 기사굴산(耆闍崛山), 즉 영축산(靈鷲山)에서 행한 설법의 자리인 영산회상(靈山會上)을 묘사하였다.
주존인 석가여래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광배를 갖춘 채 불단 위에 마련된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정수리에서 서기가 뻗어나가고 있으며, 주1을 한 손 모양과 균형 잡힌 신체가 당당하면서도 위엄 있게 보인다.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여의와 연꽃을 들었으며, 제석천과 범천은 합장을 한 모습이다.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한 십대제자는 학이나 사자를 들고 있기도 하고, 합장을 한 채 서 있기도 하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보살을 비롯한 권속들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어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봉안용 불화 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그림이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영산회상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