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의 전반부에서는 시론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표현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과 함께 시인이 가져야 하는 주지적 태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이 평론에서 김기림은 시론이 시인의 자기 발전의 박차(拍車)이며 또한 새로운 시의 탄생을 위한 부단의 노력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시학과 시론을 구분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호라티우스의 시론을 그 예로 제시한다. 이어서 표현주의자가 가지는 한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데, 표현주의를 일종의 ‘영웅주의(원문에서는 '히로이즘'으로 표기되어 있다.)’로 규정하고 감성적인 것에 치우친 자연발생적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단순히 세계를 그대로 묘사하기만 하는 행위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시가 존재의 세계와 연결된다면 주지적 시는 당위의 세계와 연결된다. 이것은 자연과 문화의 대립과도 같은 것이며 시인은 문화적 산물로서의 시를 창작함에 있어 ‘지어지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기림은 시인을 카메라에 비유하며, 자연발생적인 태도는 단순한 감수자로서의 ‘카메라’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한 시인은 그만의 독자적인 ‘카메라 앵글’을 가진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모더니즘 시론의 소개와 형성은 대체로 김기림의 초기 시론 전개 과정과 일치한다. 그 대체적인 모습은 이미지즘을 비롯한 모더니즘 시론을 소개하고 주지주의로 나아가 이를 창작적 실천으로 보여주고, 다시 리얼리즘 시론의 편린이라고 할 수 있는 전체시론과 신비평의 시학을 수용하는 과학적 시학을 거쳐 해방 정국에는 리얼리즘 시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평론은 이러한 김기림의 전개 과정의 시작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보다 앞서 1931년 1월 27일 『조선일보』에 발표한 평론인 「포에지」에서 김기림은 철저하게 시를 제작되는 것, 자연발생적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시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김기림의 일본 유학과도 관련을 맺는다. 일본에서 모더니즘을 공부한 김기림은 이후 구인회에 참가하면서 이전의 막연한 것의 추구에서 명백하게 주지주의계 모더니즘 쪽으로 그 방향을 바꾸었다. 이에 김기림이 한동안의 모색 다음 ‘주지’라는 말을 쓴 것이 이 평론을 통해서이다. 이 글에서 김기림은 충동, 또는 감정에 내맡겨진 시를 단연코 배제해야 될 대상으로 잡았다. 그는 시가 ‘제작하는 것을 의식’하는 데서 빚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반감정주의와 시를 등식관계로 본 것이다.
그런데 김기림이 주지주의 시를 거론할 때, 모더니즘의 하위 갈래로서의 신고전주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지적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시인의 지성에 의해 통제되고 계획되는 질서 하에 시를 제작하는 창작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