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광의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일치하는 동-서 방향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 말각장방형이며, 생토층인 암반층을 파고 만들었다. 널무덤(목관묘) 내부에는 요갱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에 철기를 부장하고 그 위에 관을 설치하였다. 묘광 내부는 암반층을 깨어 파낸 잔돌과 적갈색 점토, 황갈색 점토 및 크기 20~30㎝의 할석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묘광 내부토층의 함몰상태로 보아 봉토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유구 벽면은 요철이 심하며, 비스듬히 굴착하였다. 바닥면도 요철이 심하여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요갱까지 비스듬히 이어진다. 관과 굴광 사이에는 보강토를 채우고, 관 상면에 동제과초, 동과 등이 부장되었다. 묘광의 크기는 길이 325㎝, 최대폭 165㎝ 정도이다. 묘광의 깊이는 어깨선에서 바닥까지 265㎝이며, 요갱부 바닥면까지의 깊이는 275㎝로 매우 깊은 편이다. 유물은 주로 보강토 상부 및 목관과 묘광 사이 보강토, 목관 내부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동과, 동제과초 등의 청동유물과 주조 철부, 와질토기 등이다.
요갱의 형태는 암반층을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부정형의 육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크기는 최대길이 110㎝, 최대폭 80㎝, 깊이 10~12㎝ 정도이다. 요갱 내부에서는 작은 유리구슬, 골(骨)편, 칠피편, 청동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오수전과 동경 편은 기원전 1세기 중 · 후반에 속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시기의 유구로 창원 다호리 1호묘, 밀양 교동 17호묘, 경주 조양동 38호묘, 평양 정백동 37호묘 등이 있다. 출토된 토기는 완형이 한 점도 없는 점으로 보아 부장 당시 파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동모, 철부, 쇠낫(철겸) 등을 구부리거나 깨어서 매납한 것과 같은 양상으로 판단된다.
목관묘에서 출토된 유물 중 금동노기는 남부지역에서 최초로 출토된 것으로 오수전 등을 통하여 철을 매개로 중국과의 교섭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교섭은 해로가 아닌 상주-대구-영천-경주를 연결하는 내륙루트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