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고유명사표기는 한자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관직명·인명·지명 등에 대한 표기법이다. 한자의 전래 이후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기록으로 남고고자 시도한 것이다. 우리의 고유명사 표기는 음차 방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석독 표기가 발달하였다. 삼국시대의 고유명사 표기는 금석문 외에 목간 자료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이 표기는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삼국사기』의 어휘에는 고지명과 왕명, 인명 등에 대한 고유명사 표기도 있다. 고유명사표기는 차자 표기의 원리를 발달시켰으며 차자 표기법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정의
한자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관직명·인명·지명 등에 대한 표기법.
연원 및 변천
우리의 고유명사 표기는 중국의 음사와 같이 음차 방식에서 시작되었지만 다양한 음독 표기의 혼란을 막고 의미와 발음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하여 석독 표기가 발달하게 되었다. 신라 지증왕 대에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등의 왕호가 중국식으로 개명되고, 신라 경덕왕 대에 지명이 2음절 한자로 개명되어 고유명사 표기는 한자식으로 바뀌게 되었지만, 고유명사 표기 방식에 의한 고유명사 표기는 “신포향(薪浦鄕)은 곧 삽포(鈒浦)이다. 사투리가 서로 비슷하다(薪浦鄕卽鈒浦 方言相類)”와 같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한글 창제 이후 문헌에도 남아 전한다.
내용
삼국시대의 고유명사 표기는 금석문 외에 목간 자료에서도 발견되지만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관명, 지명 등이 음독과 석독의 짝으로 대응되고 복수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당시 고유명사 표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원 및 의미에 대한 김대문(金大問)의 설명이 인용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삼국사기』 권34에서 권37까지는 지리편인데 권36까지는 통일신라 영역 내 지명을 통일 전의 삼국 영역에 따라 신라(권34), 고구려(권35), 백제(권36)로 나누고 각 주 소재 군, 현의 이름에 대해 개정명(757년)-구삼국명(개정 이전 혹은 661년 이전)-今名(삼국사기 편찬 시)의 세 가지를 병렬하여 제시한다. 여기서도 구삼국명은 ‘達己縣或云多己’와 같이 이표기를 보여 고유명사 표기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권37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음독 표기와 석독 표기를 나란히 보여 주어 고유명사 표기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로 이용된다(이기문 1961).
“買忽 一云 水城” “水谷城郡 一云 買旦忽” “十谷顯 一云 德頓忽” “南川縣 一云 南買” “七重縣 一云 難隱別”(『삼국사기』 권37)
위 고유명사 표기는 고구려 한산주의 지명 중 일부인데 한 지명을 음독과 석독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다. 즉 ‘매홀(買忽)’은 음독 표기이고 ‘수성(水城)’은 석독 표기인데 둘 다 중세국어 ‘ᄆᆡ홀’에 대응하는 당시 발음으로 읽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구려 어휘로 오늘날 ‘물’에 해당하는 ‘ᄆᆡ’와 ‘성’에 해당하는 ‘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매단홀(買旦忽)’과 ‘수곡성(水谷城)’, ‘남천(南川)’과 ‘남매(南買)’의 대응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마찬가지로 ‘칠중(七重)’은 석독 표기이고 ‘난은별(難隱別)’은 음독 표기이다. ‘매홀(買忽)’과 관련한 권35의 기록 “水城郡 本高句麗買忽郡 景德王改名 今水州”을 권37의 기록과 연결지어 이해하면 고구려 지명 ‘ᄆᆡ홀(買忽/水城)’이 통일신라 경덕왕의 개명에 의해 ‘수성(水城)’이 되었고 『삼국사기』가 편찬된 고려시대에는 ‘수주(水州)’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삼국사기』 권38∼권40의 직관(職官)편에는 삼국의 관직명이 표기되어 있고 삼국본기(권2∼권28) 및 열전(권41∼권50)에는 왕호와 인명 등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문장 층위의 향찰 표기로 된 향가가 주목되지만 고유명사 어휘도 150개 이상 나타난다. 이들 어휘에는 일연 당대의 언어 사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고지명과 왕명, 인명 등에 대한 고유명사 표기도 보인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 권1의 ‘國號徐羅伐又徐伐 今俗訓京字云徐伐 以此故也’라는 기록은 신라의 옛 지명 표기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이 보이며 당시 ‘경(京)’의 훈이 ‘서벌(徐伐)’인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기록하였다. 또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왕(赫居世王)’을 ‘혹은 불구내라고도 한다(或作弗矩內)’라 하여 ‘혁거세(赫居世)’와 ‘불구내(弗矩內)’의 석독 음독 표기의 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한편 김영욱(2008: 108)은 5세기 고구려 유적지 중 모두루(牟頭婁) 무덤 천장의 ‘國罡上大開土地好太聖王’이라는 구절을 광개토왕비문의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과 대조해 보면 ‘광개토(廣開土)’가 ‘대개토(大開土)’에 대응된다고 하였다. 즉 이러한 대응을 통해 ‘광(廣)’과 ‘대(大)’가 같은 의미의 고유어 ‘한’을 나타내는 석독 표기로 쓰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설명이 맞다면 석독을 이용한 고유명사 표기가 고구려에서 꽤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차자표기법연구』(남풍현,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1)
- 『국어사개설』(이기문, 민중서관, 1961: 증보판, 탑출판사, 1972: 신정판, 태학사, 1998)
- 「고유명사 표기 한자음 연구의 회고와 전망」(이장희, 『구결연구』 26, 2011)
- 「한국어 표기의 기원과 전개과정」(김영욱, 『한국문화』 42, 2008)
- 「지명·왕명과 차자 표기」(도수희, 『구결연구』 13, 2004)
- 「한국고지명(韓國古地名)의 개정사(改定史)에 대하여」(도수희, 『국어학의 새로운 인식과 전개』, 민음사, 1991)
-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의 고유명사표기법에 미친 중국의 영향」(남풍현, 『진단학보』 68,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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