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

이형상 수고본 중 탐라순력도
이형상 수고본 중 탐라순력도
회화
유물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화공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제작한 기록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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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을 시켜 제작한 기록 화첩이다. 제주목사 이형상(1653~1733)의 가을 순력과 제주도에서 치른 다양한 행사를 묘사하였다. 그림 41면과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을 순력 장면 묘사가 총 28면으로 가장 많이 차지한다. 행사 장면은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현존 가장 오래된 제주도 단독지도인 「한라장촉」이 화첩 첫 장에 수록되어 있다. 이 화첩은 조선 후기 지방관의 순력 관행 및 제주도의 실태·풍속 등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정의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화공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제작한 기록화첩.
개설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실시한 가을 순력과 제주도에서 치른 다양한 행사를 묘사한 기록 화첩이다. 이듬해인 1703년 봄에 완성되었다. 그림 41면과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41면은 순력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 28면, 평상시의 행사 장면을 담은 11면, 제주도와 주변 도서 지도인 「한라장촉」, 후에 덧붙여진 「호연금서」 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렸으며 화첩의 크기는 세로 56.9㎝, 가로 36.4㎝이다. 서문과 「호연금서」를 제외한 40면의 그림은 ‘제목-그림-화기’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붉은 선으로 구획된, 가로 30㎝, 세로 30㎝의 정사각형 공간 안에 그려졌다.

내용

『탐라순력도』 중 가장 많은 화면이 할애된 장면은 1702년 음력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21일 간의 가을 순력으로, 총 28면에 묘사되어 있다. 본디 제주도는 전라도 관찰사의 관할 구역이었지만 육지와 거리가 먼 특수성 때문에 제주목사가 순력을 대행하였다. 목사 이형상은 제주도를 동-남-서-북 방향으로 정의현 · 대정현 · 제주목 등 3읍과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9개 진성을 순력하였다. 순력의 첫째 목적은 군사 점검 및 조련이었으며 무기, 군량미 등의 상황을 파악하고 둔마 점검 및 활쏘기 행사도 시행하였다. 강사 · 전최 · 사회 등의 심사 및 양로연 행사를 개최하였고, 순력 도중 지나치는 김녕굴 · 정방폭포 · 천지연폭포 · 산방산 등 제주도의 명승지도 탐방하였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시행된 행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순력과는 무관한 행사 장면(11면)은 진상 및 국마 목장 관련 행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제주의 특산품인 귤과 말 진상(「공마봉진」, 「감귤봉진」), 군사훈련을 겸해 시행한 수렵(「교래대렵」)과 방사(「비양방록」), 당시 제주도에 자리한 국마 목장 점검(「산장구마」, 「우도점마」) 등이 있고, 특별 행사로는 제주도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별시를 기록한 「승보시사」와 신당과 사찰 혁파를 기록한 「건포배은」이 있다. 명승유연은 「귤림풍악」, 「성산관일」, 「병담범주」 등에 나타난다.

한편 현존 최고(最古)의 제주도 단독지도인 「한라장촉」이 화첩 첫 장에 수록되어 있는데, 제주도 내의 산 · 오름 · 목장 · 마을 · 하천 · 포구 등을 기록하고 방위 및 주변 도서와의 거리도 함께 기재했다. 화첩은 본래 그림 40면과 서문으로 기획되었으나, 이형상이 이듬해인 1703년 봄 갑작스레 파직을 당하면서, 화첩 마지막에 제주도를 떠나 해남 보길도로 향하는 「호연금서」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

『탐라순력도』는 화첩으로 장황되었으나 개별 화면은 조선 전기 정립된 계회도의 3단 구성(제목-그림-좌목)을 따르고 있다. 좌목에 해당하는 하단부에는 해당 행사 관련 정보를 상세히 기입하여 18세기 초 제주도의 행정 · 군사 시설 및 상황, 지형, 인구, 풍물 등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하였다.

회화식 지도에 기록화가 융합된 형식으로, 실제 성곽 시설물 및 주변 지리를 기반으로 각종 행사 장면을 묘사하였다. 화풍은 도식적이고 인습적이며 준법은 거의 쓰이지 않았으며 철선묘와 채색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경물과 인물, 산수를 표현하였다. 또 읍성 및 진성을 묘사할 때에는 확대와 축소 기법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였다.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는 고대 회화에서 사용되던 주대종소법(主大從小法)이 적용되었으며 건축물은 주로 정면시로 묘사하였다. 전반적으로 평면성이 강하고 반복적이며 형식적인 묘사가 많다. 그러나 화첩에 보이는 제주도 경물 및 경승에 대한 묘사는 19세기 제작된 제주십경도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중앙 화단과는 다른 화풍이 제주도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탐라순력도』는 1979년 『선후천(先後天)』, 『악학편고(樂學便考)』 등 이형상이 남긴 수고본과 함께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1998년까지 이형상의 종가에서 소장해 왔으나, 제주시가 매입하였다. 2001년부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위탁 전시중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은 2009년 7월부터 ‘탐라순력도실’을 따로 마련해 원본과 복제본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지방관에 의해 제작된 화첩으로, 순력도라는 유일한 화제명을 가진 작품이자, 지방관의 순력 관행 및 18세기 당시 제주도의 실태 · 풍속 등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후기 지방관이 공무 수행 중 명승을 탐방하고 이를 시각화하던 관습이 제주도에까지 퍼진 모습을 살필 수 있으며, 지방 기록화로서는 드물게 제작자와 화가가 분명하여 주목된다. 미술사적 측면에서는 지방 기록화 및 제주도 경관의 시각화라는 측면과 지방 화풍 연구에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탐라순력도 연구논총』(탐라순력도연구회, 2001)
『조선시대 회화사론』(홍선표, 문예출판사, 1999)
「조선 후기 관료문화와 진경산수화」(박은순, 『미술사 연구』 27, 2013)
「18세기 《탐라순력도》의 제작 경위와 화풍」(윤민용, 『한국고지도 연구』 3-1, 201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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