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종연방적 등에서 노동운동을 벌였으며, 의열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27세인 1944년에 토목 기술자 조인찬과 혼인하여 몽골 탄광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신의주 시가에서 살다가 남편과 함께 월남하였다. 아들과 수양 딸 한 명과 서울에서 살다가 2012년에 별세하였다. 질녀 이효정(李孝貞)도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노동운동을 하였다.
활동사항
1940년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동지 박시목(朴時穆), 박봉필(朴鳳弼)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 역할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43년 이육사(李陸史)와 같이 독립운동을 도모하다 9월에 체포되어 베이징 감옥에 함께 구금되었다. 1944년 1월 11일 결혼을 조건으로 석방되었으나, 1월 16일 이육사가 감옥에서 순국하자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품인 「광야」, 「청포도」 등 시 작품을 정리하여 국내의 유족에게 전달하는 중책을 맡아 수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제6집(국사편찬위원회, 1981)
- 「판결문」(1939.4.14, 경성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여성인물사』 (전경옥, 김은실, 정기은,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2004)
- 『경북여성사』(경북여성정책연구원, 2004)
- 국가보훈처 나라사랑광장(www.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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