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군 군복

  • 생활
  • 의복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착용한 군복.
이칭
  • 이칭교련병대 군복
의복
  • 제작 시기1881년(고종 18) 이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김정민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 최종수정 2023년 10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별기군 군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이 착용한 군복이다. 이는 별기군 또는 왜별기(倭別技)라고도 불린 교련병대(敎鍊兵隊)가 착용한 군복이다. 교련병대는 1881년(고종 18) 4월에 창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로 모자와 상 · 하의로 구성된 군복을 착용했으며, 군복의 색상은 초록색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착용한 군복.

연원

고종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근대화된 군대를 창설하고자 했으며, 1881년(고종 18) 4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교련병대(敎鍊兵隊)를 창설한다. 이 조직은 별기군(別技軍), 왜별기(倭別技)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호리모도 레이조[掘本禮造]가 훈련 교관을 담당하고, 오군영(五軍營)에서 지원자 80명을 선발하여 훈련에 착수하였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서 1881년 5월에 정식으로 선발한 군인의 복장을 국왕의 친위 부대인 무위소(武衛所)가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후에는 통리기무아문의 군무사(軍務司) 교련국(敎鍊局)에서 군용 장비를 지원하였다.

형태 및 용도

별기군(교련병대)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 속 군인들은 모자와 상 ‧ 하의로 구성된 군복을 착용하고 있다. 모자는 전립(戰笠)과 유사하지만, 모정(帽頂)이 납작하여 차양이 있는 서양 모자인 보터(boater)에 가까운 형태이다. 상의는 맞깃이며, 앞 중심에서 단추로 여미는 형태의 저고리이다. 허리에는 서양식 허리띠를 했으며, 하의로, 상의와 같은 색 또는 약간 옅은 색의 바지를 착용하였다.

변천 및 현황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1881년 8월 27일 고종은 각계의 주요 인사와 함께 춘당대(春塘臺)에서 별기군(교련병대)의 훈련 상황을 점검하였다. 이때 별기군에게 군복을 갖추고 무기를 소지하라 하교(下敎)하였고, 별기군의 시예(試藝)가 끝난 후 매우 정예하다고 칭찬했는데 이는 기존 군대와 다른 차림을 하고 서구식 무기로 훈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형규(金衡圭, 1861~1835)는 그의 일기 『청우일록(靑又日錄)』에 별기군 군복으로 소전립(小戰笠)에 쾌자의(快子衣) 차림과 단의(單衣)에 칼과 총을 찬 차림을 언급하였다.

1931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윤효정(尹孝定, 1858~1939)의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에는 별기군 군복의 색상이 언급되었는데, 모두 초록색(草綠色)이기 때문에 별기군 군인들을 초록 군복(草綠軍服)이라 불렀다고 하여 군복의 색이 초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기군으로 알려진 사진 속 인물들이 착용한 군복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모자와 상 ‧ 하의가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구 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친군영(親軍營) 군인의 것이다. 모자의 형태는 서양식인데, 전통적인 전립 제작 방식으로 만들고 모정에는 공작 깃 장식을 늘어뜨렸다. 모자의 앞과, 차양 위 붉은 띠에 적힌 묵서를 통해 이 모자가 친군영 전영(前營)에 소속되었던 초장(哨長)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박물관에 소장된, 깃이 네모진 군복의 상의는 뒷길이 앞길보다 약간 긴 형태이다. 맞깃이고 앞여밈에 단추 5개가 달렸으며, 1880~1890년대 중앙 군영에서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별기군(교련병대) 군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가 착용한 군복으로, 서양 모자의 형태를 도입하고, 상의에 서양 단추와 허리띠를 적용하는 등 한복에 서양식 요소가 접목된 개화기 복식의 특징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원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청우일록(靑又日錄)』

  • 단행본

  • - 윤효정, 『풍운한말비사』(수문사, 1947)

  • - 김형규, 『한국사료총서』 22집(국사편찬위원회, 1971)

  • - 심헌용, 『한말 군 근대화 연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5)

  • - 국립문화재연구소,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 논문

  • - 서인한, 「임오군란 당시의 중앙군 조직과 군비 실태」(『국사관논총』 90, 국사편찬위원회, 2000)

  • 인터넷 자료

  • -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주석

  • 주1

    : 재주를 시험하여 봄. 우리말샘

  • 주2

    : 한 겹으로 지은 옷. 우리말샘

  • 주3

    : 구한말에 서울과 지방에 설치하여 여러 군영을 통할하던 관아. 서양의 군제(軍制)를 본떠서 고종 19년(1882)에 처음으로 친군 좌ㆍ우영을 설치하였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후기에, ‘별기군’을 속되게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5

    : 꼭대기가 납작하고 차양이 있는 모자. 밀짚을 바니시로 윤을 내서 만든다. 우리말샘

  • 주6

    : 앞을 여미지 아니하고 마주 대는 옷깃. 우리말샘

  • 주7

    : 서울 창경궁 안에 있는 대(臺). 옛날에 과거를 실시하던 곳이다. 우리말샘

  • 주8

    : 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우리말샘

  • 주9

    : 먹물로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 주10

    : 조선 후기에, 서울 지방의 군대를 통솔하던 친군영의 하나. 우리말샘

  • 주11

    : 초(哨)의 우두머리. 우리말샘

  • 주12

    :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개혁되어 가던 시기. 우리말샘

  • 주13

    : 옷의 꾸밈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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