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착용한 군복.
연원
형태 및 용도
변천 및 현황
조선 후기의 문신 김형규(金衡圭, 1861~1835)는 그의 일기 『청우일록(靑又日錄)』에 별기군 군복으로 소전립(小戰笠)에 쾌자의(快子衣) 차림과 단의(單衣)에 칼과 총을 찬 차림을 언급하였다.
1931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윤효정(尹孝定, 1858~1939)의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에는 별기군 군복의 색상이 언급되었는데, 모두 초록색(草綠色)이기 때문에 별기군 군인들을 초록 군복(草綠軍服)이라 불렀다고 하여 군복의 색이 초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기군으로 알려진 사진 속 인물들이 착용한 군복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모자와 상 ‧ 하의가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구 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친군영(親軍營) 군인의 것이다. 모자의 형태는 서양식인데, 전통적인 전립 제작 방식으로 만들고 모정에는 공작 깃 장식을 늘어뜨렸다. 모자의 앞과, 차양 위 붉은 띠에 적힌 묵서를 통해 이 모자가 친군영 전영(前營)에 소속되었던 초장(哨長)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박물관에 소장된, 깃이 네모진 군복의 상의는 뒷길이 앞길보다 약간 긴 형태이다. 맞깃이고 앞여밈에 단추 5개가 달렸으며, 1880~1890년대 중앙 군영에서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청우일록(靑又日錄)』
단행본
- 윤효정, 『풍운한말비사』(수문사, 1947)
- 김형규, 『한국사료총서』 22집(국사편찬위원회, 1971)
- 심헌용, 『한말 군 근대화 연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5)
- 국립문화재연구소,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논문
- 서인한, 「임오군란 당시의 중앙군 조직과 군비 실태」(『국사관논총』 90, 국사편찬위원회, 2000)
인터넷 자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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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재주를 시험하여 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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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한 겹으로 지은 옷.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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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구한말에 서울과 지방에 설치하여 여러 군영을 통할하던 관아. 서양의 군제(軍制)를 본떠서 고종 19년(1882)에 처음으로 친군 좌ㆍ우영을 설치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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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후기에, ‘별기군’을 속되게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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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꼭대기가 납작하고 차양이 있는 모자. 밀짚을 바니시로 윤을 내서 만든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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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앞을 여미지 아니하고 마주 대는 옷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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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서울 창경궁 안에 있는 대(臺). 옛날에 과거를 실시하던 곳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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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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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먹물로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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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조선 후기에, 서울 지방의 군대를 통솔하던 친군영의 하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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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초(哨)의 우두머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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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개혁되어 가던 시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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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옷의 꾸밈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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