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근대화된 군대를 창설하고자 했으며, 1881년(고종 18) 4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교련병대(敎鍊兵隊)를 창설한다. 이 조직은 별기군(別技軍), 왜별기(倭別技)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호리모도 레이조[掘本禮造]가 훈련 교관을 담당하고, 오군영(五軍營)에서 지원자 80명을 선발하여 훈련에 착수하였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서 1881년 5월에 정식으로 선발한 군인의 복장을 국왕의 친위 부대인 무위소(武衛所)가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후에는 통리기무아문의 군무사(軍務司) 교련국(敎鍊局)에서 군용 장비를 지원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1881년 8월 27일 고종은 각계의 주요 인사와 함께 춘당대(春塘臺)에서 별기군(교련병대)의 훈련 상황을 점검하였다. 이때 별기군에게 군복을 갖추고 무기를 소지하라 하교(下敎)하였고, 별기군의 시예(試藝)가 끝난 후 매우 정예하다고 칭찬했는데 이는 기존 군대와 다른 차림을 하고 서구식 무기로 훈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형규(金衡圭, 1861~1835)는 그의 일기 『청우일록(靑又日錄)』에 별기군 군복으로 소전립(小戰笠)에 쾌자의(快子衣) 차림과 단의(單衣)에 칼과 총을 찬 차림을 언급하였다.
1931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윤효정(尹孝定, 1858~1939)의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에는 별기군 군복의 색상이 언급되었는데, 모두 초록색(草綠色)이기 때문에 별기군 군인들을 초록 군복(草綠軍服)이라 불렀다고 하여 군복의 색이 초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기군으로 알려진 사진 속 인물들이 착용한 군복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모자와 상 ‧ 하의가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구 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친군영(親軍營) 군인의 것이다. 모자의 형태는 서양식인데, 전통적인 전립 제작 방식으로 만들고 모정에는 공작 깃 장식을 늘어뜨렸다. 모자의 앞과, 차양 위 붉은 띠에 적힌 묵서를 통해 이 모자가 친군영 전영(前營)에 소속되었던 초장(哨長)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박물관에 소장된, 깃이 네모진 군복의 상의는 뒷길이 앞길보다 약간 긴 형태이다. 맞깃이고 앞여밈에 단추 5개가 달렸으며, 1880~1890년대 중앙 군영에서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별기군(교련병대) 군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가 착용한 군복으로, 서양 모자의 형태를 도입하고, 상의에 서양 단추와 허리띠를 적용하는 등 한복에 서양식 요소가 접목된 개화기 복식의 특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