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에 배속되어 행정 실무를 담당하였던 이속(吏屬)을 서원(書員)이라고 하였다. 중앙 관아의 서원은 주로 문서 작성, 활자 배열[列字], 회계, 공사 전달 등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였고, 지방관아의 서원은 세금 징수, 손실 답험(損實踏驗) 등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였다. 그 가운데 중앙 관아인 교서관에는 서책 간행과 관련하여 교정창준(校正唱準), 열자서원(列字書員), 장책서원(粧冊書員) 등의 관원이 배속되어 있었으며, 이외에도 균자장(均字匠), 인출장(印出匠), 각자장(刻字匠), 목장(木匠), 지장(紙匠) 등의 장인이 소속되어 있었다.
『용재총화(慵齋叢話)』의 권7에는 "나무에 새기는 사람을 각자(刻字)라 하고 주조하는 사람을 주장(鑄匠)이라 한다. 드디어 여러 글자를 나누어서 궤에 저장하였는데, 그 글자를 지키는 사람을 수장(守藏)이라 하여 나이 어린 공노(公奴)가 이 일을 하였다. 그 서초(書草)를 부르는 사람을 창준(唱準)이라 하였으며 모두 글을 아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하였다. 수장이 서초 위에 열자(列字)하고 판에 옮기는 것을 상판(上板)이라 하고, 대나무 조각으로 빈 데를 메워 단단하게 하여 움직이지 않게 하는 사람을 균자장(均字匠)이라 하고, 주자를 받아서 이를 찍어내는 사람을 인출장(印出匠)이라 하였다."라고 금속활자로 서책을 인출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한 직책과 역할이 기록되어 있다. 금속 활자본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던 이들은 각자장, 주장, 수장, 창준, 균자장, 인출장 등이며, 그 과정에서 열자장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창흡(金昌翕)의 『삼연집(三淵集)』 「선집인역장인연음시소기(先集印役匠人宴飮時小記)」에 상당수의 열자장이 등장하고 있어, 균자장과는 다른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선집인역장인연음시소기」에 따르면 균자장 2명, 각자장 1명, 인출장 1명, 열자장 6명으로 열자장의 인원이 가장 많았다. 또한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균자장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각자장, 인출장, 열자장 순으로 역할을 언급하였다.
균자장은 활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활자의 높이가 평평하고 균등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으므로 비중이 높은 자리로 인식되었다. 반면 열자장은 창준이 불러준 원고의 내용에 맞춰 활자를 찾아 배열하고 조판하는 업무를 담당하기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직책이었다. 열자서원은 교서관에 소속되어 원고 내용에 따라 활자를 나열・조판하는 열자(列字) 업무를 담당하였던 관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