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대장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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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니로 작성된 사경 중 대장경과 같이 표지, 본문 서명 아래 함차가 기록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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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니로 작성된 사경 중 대장경과 같이 표지, 본문 서명 아래 함차가 기록된 사경이다. 사경은 재료와 제본 형태, 발원자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재료에 따라 먹으로 쓴 것과 금 또는 은니로 쓴 것으로 크게 나누는데 먹으로 쓴 것은 묵서경, 금이나 은으로 쓴 것은 각각 금자경, 은자경이라 부른다. 이 중 대장경은 표지나 본문 서명 아래 함차가 기록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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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니로 작성된 사경 중 대장경과 같이 표지, 본문 서명 아래 함차가 기록된 것.
내용

사경은 재료와 제본 형태, 발원자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재료에 따라 먹으로 쓴 것과 금이나 은니로 쓴 것으로 크게 나누는데, 먹으로 쓴 것은 묵서경, 금이나 은으로 쓴 것은 각각 금자경, 은자경이라 부른다. 이 중 대장경은 표지나 본문 서명 아래 함차가 기록된 것을 말한다.

대체로 금은니로 쓴 사경 중 발원자가 국왕인 경우 권자본이나 절첩본의 형태에 권말이나 권수에 발원의 필사기가 있고, 표지에는 당초보상화문(唐草寶相華文)이 있으며 권수에는 화염에 싸인 신상(神像)이나 설법도(說法圖)가 그려져 있다. 국가나 국왕이 주도한 사경은 보통 1행 14자로 쓴다. 반면 개인적인 복락과 안녕을 빌기 위해 제작된 개인 사경들은 대체로 절첩의 형태에 한 면은 6행씩이며 각 행은 보통 1행 17자이다.

국가 주도의 사경을 만드는 본격적인 기관은 고려 명종 11년(1181)의 사경원(寫經院)으로, 금자원(金字院) · 은자원(銀字院)이라는 기록은 후대인 충렬왕 때부터 나타나 호국과 왕실의 안녕을 위한 공덕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초기에는 승려들이 필사자를 고용하여 금자, 은자 사경들을 사경하여 완성하도록 감독하고 지도하였다. 충렬왕 이후에 사경을 하는 승려들은 사경승(寫經僧)으로 지위가 높아졌다.

충렬왕조에 들어서부터는 국왕 발원의 금은자 대장경 사성이 동왕 원년(1275)에 시작되어 지속되었다. 동왕 7년(1281) 3월에는 승지 염승익(廉承益)이 집의 일부를 금자대장경 사성소[金字大藏 寫經所]로 쓸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동왕 9년(1283) 9월에도 왕이 금자대장원에 공양하면서 사경불사를 독려하였으며, 동왕 15년(1289) 윤 10월에는 금자원에 행차하여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의 사성을 경찬하였다.

동왕 24년(1298) 충선왕이 원에서 돌아와 왕위에 오른 뒤 금은자 대장소에 행차하여 오대부경(五大部經) 즉 화엄 · 대집 · 반야 · 법화 · 열반의 대승경에 대하여 말한 것에서도 금은자 사경 불사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지속되었다. 충렬왕 초기부터 충숙왕에 이르는 동안 국왕 발원 금은자대장경의 사경 작업이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반세 기간은 중앙 관료와 귀족층, 일반인들까지 사경 불사에 적극성을 띠었기에 고려 사경의 기술은 최고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왕 발원의 금은자 대장경의 사성은 ‘충(忠)’자가 이름에 들어간 임금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충렬왕은 집권 초기에 은자대장경을 먼저 사경해 완성하였고, 그 뒤 금자대장경의 사경을 시작하였다. 충선왕대 1312년 8월에는 왕명으로 금자장경(金字藏經)을 민천사(旻天寺)에서 쓰게 하여 모후를 추복한 기록이 있다. 충숙왕대에는 『금서밀교대장(金書密敎大藏)』 130권을 나영수(羅英秀)의 주관 아래 명필을 동원하여 사경이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금자대장경으로는 충렬왕 때 완성된 것으로, 일본과 중국에 소장된 『불설잡장경(佛說雜藏經)』, 『묘법성염처경(妙法聖念處經)』, 『백천인다라니경(百千印陀羅尼經)』 등이 있다.

『불설잡장경』은 부처가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설교한 경이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은 전생에 착하거나 또는 악한 일을 한 결과로 현세에 죄와 복의 갚음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경은 『현식론(顯識論)』과 같은 해인 1284년에 사경해 완성한 것으로 일부분만 남아 있고 글씨는 선사인 지양(之讓)이 쓴 것이다.

또 다른 『묘법성염처경』은 불교의 묘한 지혜를 가지고 인간 세상을 관찰한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일체 고통에서 벗어나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쁜 생각과 악행을 버리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는 착한 덕행을 쌓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전은 『불설잡장경』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동왕(同王) 11년(1285)에 이루어졌으며 식목녹사(式目錄事) 김필위(金必爲)가 쓴 것이다.

그 밖에 『백천인다라니경』은 충렬왕 10년인 1284년에 충렬왕과 궁주(宮主)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의 발원으로 제작된 금자대장으로 전형적인 금은자대장 국왕발원사경의 표지와 문양, 변상도, 본문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본문은 『백천인다라니경』 외에 4종의 다라니경이 포함되어 있다. 또 표지화 뒤에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의 수결과 파스파문자의 인장이 있는 점, 거란장이 저본인 점, 변상도에 화사가 적혀 있고 사경을 사경승이 아닌 하위 관리에게 청하였다는 점도 일반적인 국왕발원사경과는 다르다.

전체 9장의 주1에 1행 17자 혹은 16~18자의 경문을 금자로 쓰고 수정이 박힌 축을 중심으로 한 주2이다. 위태천이 그려진 변상도는 좌측 하단에 ‘鄭[불명]畵’라는 화사명이 있다. 서사자로는 최정(崔楨)이라는 하위 관직을 가진 인물로 사경 본문의 서체를 통해 볼 때 달필로서 참여한 것이다.

이 밖에 사성기의 ‘갑자(甲子)’ 연도로 1264년과 1324년의 이견이 있는 『불설대길상다라니경(佛說大吉祥陀羅尼經)』 · 『불설보현다라니경(佛說寶賢陀羅尼經)』도 금자대장으로, 일본의 태산사(太山寺)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남권희,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논문

남권희·석혜영, 「1284년 忠烈王, 元成公主 발원 金字大藏 百千印陀羅尼經(合部)의 서지적 연구」(『서지학연구』 74, 한국서지학회, 2018)
주석
주1

검은빛이 도는 짙은 남색으로 물들인 종이. 우리말샘

주2

두루마리로 된 책자. 또는 그렇게 책의 겉모양을 꾸미는 방법. 우리말샘

집필자
남권희(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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